범죄의 경계선에 선 청소년을 구하려면[기고/조주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8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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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아동학대 혐의로 가정법원 판사 앞에 섰다. 딸은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엄마를 112에 신고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판사의 요청에 엄마는 “딸은 지금도 가출 중입니다. 사실 그동안 딸에게 배드민턴 채로 많이 맞았는데 차마 딸을 신고할 수 없어서 참고 지냈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지난 몇 년 동안 학교폭력, 아동학대, 직계존속 폭행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이 가해자인 사건들을 접하는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찰관들, 가정법원 판사들의 고민은 더 깊어 간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나중에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당하고, 가정에서 학대를 당한 피해 아동이 나중에 학교에서 이른바 ‘일진’이 돼 경찰서, 법원을 드나든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전문직 부모’의 자녀들도 적지 않게 비행이나 범죄에 연루된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13세 소년이 자신의 남성성을 조롱하는 동급 여학생을 칼로 무참히 살해하는 내용을 다뤘는데 “사회의 다양한 결을 세심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자식이 밖에서 사고 치고 교도소 가는 것보단 차라리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자조하는 부모의 속앓이를 어렵지 않게 듣는다.

현장에서 마주한 청소년 문제의 상당수는 자라는 과정에서의 교육 결여 등의 탓인 경우가 많다. 어떤 아이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속칭 ‘문제아’가 되고, 더러는 다이어트 약을 먹으며 우울증을 경험한다. 경찰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과 함께 마약·도박 중독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치유 선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관련 대책을 계속 고심하고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 비행은 성인들의 범죄와 달리 단순히 처벌 대상으로만 보면 안 된다. 치유가 필요한 질병으로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학교전담경찰관(SPO)들도 학교 안팎 청소년 면담에 노력을 들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학생 대상 범죄 예방 교육은 아직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일방적인 전달로 받아들인다. 심각해지는 청소년 도박이나 성매매 역시 문제를 다룰 컨트롤타워가 어딘지 모호하다.

청소년이 경찰서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평등에 대한 가치를 가정, 학교, 지역사회 곳곳에서 복원해야 한다. 그중 학교가 핵심이다. 학교는 지식 습득의 장을 넘어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법, 사람을 만나고 갈등을 조정하고 잘 이별하는 법까지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공간’으로서 소셜미디어가 무한히 확장되는 가운데 청소년에게 지나친 외모 강박을 주입하거나 폭력성을 부추기는 콘텐츠, 미디어, 게임 중독에 대한 규제와 범죄 예방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인 동시에 ‘청소년의 달’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경찰의 역할을 재정립할 때다. 여기에 더해 동료, 이웃, 친구, 선생님과 제자, 지역공동체가 손잡고 나아갈 때 부부에게는 평화가, 아이에게는 인권이, 부모와 자식 간에는 소통이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동학대#학교폭력#청소년 비행#가정폭력#정신건강#예방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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