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되면서 그간 정치적 불확실성에 지지부진했던 인수합병(M&A) 작업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들이 ‘경기 침체에 대응할 유동성을 확보하느냐’ 여부가 M&A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관세 인상 등 글로벌 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어 거래 종결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실트론을 비롯해 애경산업, DIG에어가스, 롯데카드 등 주요 매물들의 매각 일정이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지연돼 왔다
SK그룹과 애경그룹 등은 자금 조달을 위해 올 초부터 SK실트론과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해 왔지만, 매각 예비 입찰일을 대선 이후인 6월로 미뤘다. SK그룹은 대대적 사업 재편(리밸런싱) 차원에서 이달 9일 SK실트론 예비입찰에 나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맥쿼리자산운용의 DIG에어가스 매각 작업 역시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예비입찰일이 6월로 늦춰졌다.
롯데카드 역시 올해 초부터 국내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인수 의사를 타진하는 등 매각 준비 작업에 나섰지만, 지난달에야 투자안내문을 배포하는 등 아직 구체적인 일정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 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유력 인수 후보인 금융사들이 그동안 인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M&A 시장은 사실상 ‘거래 실종’ 상태다. 올해 성사된 조 단위 거래는 SK스페셜티(2조6000억 원)와 롯데렌탈(1조60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들 거래는 지난해부터 진행됐던 건으로, 올해 들어 매각 작업이 본격화된 M&A의 경우 대부분 일정이 밀리고 있다.
M&A 업계에서는 국내외 정세 불안으로 기업들의 국내 투자 인수 의지가 꺾인 상황에서, 사모펀드들마저 연기금이나 공제회, 금융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영향으로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M&A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 공백으로 인해 인허가 문제 등 행정 절차가 늦어지는 것 역시 거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시장에서는 이제 내수 중심 기업의 M&A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미국발 정책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어 거래가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인상률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그 여파가 기업 실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정 거래 가격’을 찾기 어렵다는 게 투자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발 관세 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 등도 M&A 작업에 변수로 꼽히고 있다.
실제 미국발 정책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거래가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반도체 장비업체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HPSP의 경우, 경영권 매각이 추진됐으나 미국발 관세 인상 위험으로 반도체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매각 작업이 당분간 중단됐다.
IB 업계 관계자는 “내수 기업의 M&A는 속도가 붙을 것”이라면서도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매물의 경우 한미 관세 협상 등 변수가 많아 매각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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