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15% 합의]
실무협상 막판까지 줄다리기 치열
美, 트럼프 지지층 염두 개방 요구… 韓 “美 소고기 최대 수입국” 방어
우리 정부내서도 수용 놓고 고성… 일부선 “농축산물 지키려 투자 늘려”
3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한국 협상단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하면서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민감성을 감안해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미국산 쌀과 소고기에 대해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최종 합의했다. 미 측의 개방 압박이 가장 거센 분야로 꼽히면서 마지막까지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지만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방어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시위 사진까지 내보이며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 한국에서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는 점을 호소한 전략이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 광우병 촛불 사진 보여주며 총력 방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통상협의 결과 브리핑’을 열고 “미국산 농축산물의 추가 시장 개방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우리 협상단의 끈질긴 설명 결과, 미 측이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 농가의 요구를 반영해 한국 협상단에 미국산 쌀 수입 확대와 소고기 수입 규제 철폐를 계속해서 압박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다양한 논리로 설득 작업을 이어갔다. 특히 한국이 제도 특성상 특정 국가로부터의 쌀 수입을 마음대로 늘리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국가와의 협의 없이 미국산 쌀 수입량을 늘리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하게 된다. 미 측이 협상 과정에서 자국산 쌀 수입 확대를 무작정 요구할 수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소고기 수입 문제는 정부 내부에서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이견이 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우리 정부 내에서 협상 전략이 오갈 때도 부처 간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었다”면서도 “대통령이 판단할 때는 농축산물이 가진 정치적 민감성,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감안해 추가 개방을 막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단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라는 점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의 한국 수출액은 22억2000만 달러로 전 세계 1위였다.
소고기와 쌀 등 세부 내역을 담당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아니라 통상 전체를 총괄하는 미국 상무부에 협상력을 집중한 점도 주요했다. 김 실장은 “쌀, 소고기 등을 담당하는 USTR은 (완전 개방을) 집요하게 얘기하지만 통상 (담당 미 부처) 쪽은 (우리 전략에) 공감해줬다”고 전했다.
최근 농축산물 개방 이슈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국내 여론 반발이 컸던 점 역시 쌀과 소고기 개방을 막는 데 한몫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도 동원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저희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있었던 (촛불시위 인원이) 100만 명 이상인 사진을 미국에 보여줬다”며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준비했는데 그런 게 우리 한국 상황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 “농축산물 지키려 투자 키웠다” 지적도
우리 정부가 쌀과 소고기 시장을 지키는 데 성공했지만 일각에선 농축산물 시장을 지키려다 투자금이 너무 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우리 정부는 일본이 계획했던 4000억 달러의 절반가량을 직접 투자로 제시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쌀과 소고기 시장을 지킨 것은 다행이지만 막판에 미국의 압박에 투자금액이 뛰었다”며 “대미 투자 확대는 결국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것이라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통상 전문가들도 이번 협상 결과가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일부 아쉬움을 드러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대미 투자 규모가 3500억 달러로 결정됐는데 일본의 투자액(5500억 달러)과 비교하면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너무 많다고 볼 수도 있다”며 “반대급부로 민감한 농축산물 시장을 지켜냈고, 미국산 구매 약속을 최소화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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