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반도체 장비 규제… ‘트럼프식 길들이기’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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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장비, 中반입땐 허가 받아라”
갑자기 제한… 경영 불확실성 확산
지분 요구 번복-관세 으름장 등… ‘손바닥 뒤집기’ 정책에 속수무책
귀국 이재용 “제 일 열심히 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 규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하고 있다. 인천=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 규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하고 있다. 인천=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반도체 관련 정책이 자주 바뀌면서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약속했던 반도체 보조금 대신 기업 지분을 요구하거나, 중국으로 보내는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를 갑자기 강화하는 등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게 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방식의 ‘반도체 길들이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트럼프식 길들이기에 피로감 커지는 韓 기업

31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하려면 건별로 미 행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의 반도체 규제 변동성이 크게 커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VEU 제외가 대표적이다. 앞서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위해 미국산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행하면서도,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유예 조치를 적용했다. 1년 뒤인 2023년에는 한국 기업들을 VEU 대상에 포함시켰는데 2년 만에 다시 제외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단기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공장은 정기적인 장비 교체와 유지 보수가 필수인데, 행정 절차가 추가된 데다 승인 여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약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약 4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련 ‘말바꾸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반도체법에 근거해 주기로 했던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그만큼 반도체 기업들의 지분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에 대해선 지분을 취득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수출 허가를 무기로 대규모 거래에 나서기도 했다. 4월 엔비디아의 H20 등 중국용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가, 지난달 이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중국 판매 매출의 15%를 정부에 귀속시키기로 한 것. 최근에는 반도체 관련 품목별 관세를 100%까지 높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기업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 반도체 업계 “먼저 움직일 수도 없고…”

이 같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책 변동과 관련해 국내 기업들은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반도체 관련 제도 변경을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먼저 움직일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도 ‘로키(low-key·절제된 방식)’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날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 강화에 대해 “저는 제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올해 핵심 먹거리 등의 추가 질문에도 “일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차원의 국내 반도체 기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국내 기업이 미국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반입할 때 한국 정부가 미국 기준에 맞춘 인허가를 집행할 수 있도록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정책#반도체 길들이기#경영 불확실성#삼성전자#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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