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그록’과 라이선스 계약
창사이래 최대 규모 투자 현금 지급
빅테크들 자체 개발 움직임에 맞서
추론용 AI칩 시장도 경쟁 우위 의도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설계 스타트업인 ‘그록(Groq)’의 기술 라이선스와 핵심 인력을 확보하면서 추론용 AI 칩 시장 장악에 나섰다. 라이선스 계약이란 형태로 반독점 규제를 피했지만 사실상 미래 경쟁자를 인수해 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현지 시간) 그록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회사의 추론 기술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엔비디아와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록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조너선 로스를 비롯해 서니 마드라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핵심 임원진도 엔비디아에 합류할 예정이다.
CNBC 등은 엔비디아가 그록의 기술 라이선스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200억 달러(약 29조 원)를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엔비디아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다. 엔비디아는 앞서 2020년 이스라엘 반도체 업체 멜라녹스를 약 70억 달러(약 10조 원)에 인수했고, 최근에는 인텔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투자해 약 4%의 지분을 확보했다.
그록은 2016년 설립된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으로, 거대언어모델(LLM) 추론에 특화된 ‘언어처리장치(LPU)’ 설계에 주력해 왔다. 이 회사는 올해 9월 7억5000만 달러(약 1조 원)를 조달하며 약 69억 달러(약 10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 매출은 약 5억 달러(약 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를 엔비디아가 범용 AI 칩인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CUDA)’ 중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추론형 AI 칩 시장 확대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추론용 AI 칩을 개발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잠재적 경쟁자’의 기술과 인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록 창업자인 로스 CEO는 구글의 추론용 AI 칩인 텐서처리장치(TPU)의 핵심 설계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록의 저지연(low-latency) 칩 설계 기술을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아키텍처에 통합해 추론과 실시간 연산 전반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 CEO는 “그록을 인수하는 것은 아니며, 회사는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록의 ‘알맹이’는 결국 엔비디아로 넘어가는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반독점 규제 이슈를 피하기 위해 기업 인수합병(M&A) 대신 기술과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인력 흡수(acqui-hiring)’ 방식의 거래 구조를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