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 KDI 원장 인터뷰
전쟁 전보다 국제유가 크게 올라… 반도체 초호황 상방 요인도 공존
韓 장기성장률 30년간 계속 하락… 기업 경쟁력 떨어지며 고용 위축
‘아이디어 주도 성장’ 해법 찾는중
21일 김세직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세종시 본원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취임 후 첫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 원장은 “장기 경제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원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말했다. KDI 제공
“올해 경제의 가장 큰 변수는 중동 전쟁이다. 전쟁 전보다 국제 유가가 20% 오른 상태가 1년간 지속되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세직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66)은 21일 세종시 본원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중동 전쟁 이후 유가 상승이 경제성장률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이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 건 처음이다.
중동 전쟁 직전인 2월 27일 두바이유 현물 가격이 배럴당 71.24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85달러 이상 유가가 지속되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앞서 KDI는 2월 올해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
다만 김 원장은 중동 상황의 전개 양상을 예측하기 어려워 상·하방 요인이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생각보다 더 커 보이는 만큼 성장률을 높일 수도 있다”며 “전쟁 양상이 확실해지면 어느 영향이 더 큰지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인 김 원장은 한국 장기 성장률이 1990년대 초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제로 성장’ 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경제 전략은….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장기 경제성장률(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다. 0%대 장기 경제성장률을 물려받은 이번 정부가 성장(잠재성장률 3% 달성)에 방점을 찍은 것은 잘한 일이다. 미국 관세 정책, 중동 전쟁 같은 단기적인 충격에 대응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성장 전략이 있어야 한다.”
―곳곳에서 ‘K자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장기 경제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 하락하는 동안 철강, 해운, 석유화학 등 수출을 주도했던 산업들이 하나씩 경쟁력을 잃었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근로자 비율도 줄었다. 재산, 지역, 교육, 결혼 등 사회 전반의 양극화 역시 산업 기반이 무너진 탓이다.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혁신 능력이 부족해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반도체마저 무너지면 큰일이다.”
―나랏빚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우려도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채무가 많이 늘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 적재적소에 재정을 투입해 성장률이 반등하면 정부 부채를 내는 것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더 빠르게 늘어 재정 건전성이 오히려 개선될 수 있다. 지금 손을 놓고 있다가 성장을 못 하게 되면 그때는 원하지 않아도 재정을 쓸 수밖에 없다.”
―청년층 고용 위축도 장기화되고 있다.
“기업이 경력직을 원하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인턴과 같은 일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청년 일자리 한파의 근본 이유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할 여력이 줄어들어서다. 한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면서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줄었다.”
―해결책은 뭔가.
“혁신적 기술을 만드는 ‘아이디어 주도 성장’이다. 지금까지 늘어난 연구개발(R&D) 투자는 소수에 집중됐다.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불필요한 암기 중심 교육이 계속되고 있다. 온 국민이 아이디어를 내면 충분히 보상하고 존중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아무도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
“KDI부터 아이디어 등록제 시작, 보상도 할 생각”
김세직 원장 인터뷰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 도입을 제안했는데….
“KDI에서 먼저 시작하려고 한다. 연구진이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고안하면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실험 중이다. 적어도 KDI 내에서는 권리를 보장해 주고 보상도 할 생각이다. KDI를 시작으로 다른 연구기관, 정부 부처, 전 국민으로 확대된다면 아이디어가 모여 예산을 100조 원 줄일 수도 있지 않겠나.”
―그만큼 창의력 교육이 중요해 보인다.
“교육과 대학 입시도 창의력 중심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기업가들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줄 사람을 고용하고 싶을 거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 근로자들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중국은 이미 아이디어 주도 성장으로 넘어간 듯하다.
“우리를 쫓아오던 중국은 일찌감치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경로를 틀었다. 중국 젊은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그에 대한 보상 시스템도 충분하다. 중국이 이러한 전환으로 한국을 앞지르는 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 거다.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千人計劃)’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해외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데려와야 한다. 그러려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장기 경제성장률
해당 연도와 앞뒤 5년씩 총 11년 치 연간 경제성장률을 산술 평균한 것. 단기 경기변동 요인이 제거돼 국가가 장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성장률(잠재성장률)을 추산할 수 있다.
김세직 KDI 원장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 국제통화기금(IMF)선임 이코노미스트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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