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행인들 사이로 ‘부아앙’… 오토바이에 사망 年388명

  • 동아일보

로드 리부트: ‘사망 제로’를 향해

‘부아앙∼!’ 13일 오후 7시 반경 서울 영등포시장사거리. 보행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 사이로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파고들었다. 대각선으로 사거리를 가로지른 오토바이는 보행로 위로 거침없이 올라섰고, 행인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다. 취재팀이 지켜본 1시간 동안 보행로를 주행한 오토바이는 17대에 달했다.

이곳은 경찰청이 지난달 16일부터 번호판 인식 단속 장치를 시범 설치해 이륜차의 보행로 통행을 단속한 전국 5곳 중 1곳이다. 단속 표지판이 무색하게 한 달간 이곳에서만 415건, 전국적으로는 978건이 적발됐다.

‘차는 찻길, 사람은 보행로’라는 수칙은 상식이고, 위반은 범칙금 4만 원에 벌점 10점이 부과되는 범법 행위다. 하지만 배달 산업이 커지고, ‘다들 어기니까’라는 방심이 겹치면서 보행로는 ‘무법 오토바이’의 무대가 됐다. 지난해 이륜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388명으로 전년보다 7.5% 늘었다. 이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2549명을 기록하며 1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핵심 원인이 됐다.

동아일보는 교통기획 ‘로드 리부트: 사망 제로를 향해’를 통해 무너진 도로 위 질서를 점검한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느슨해진 안전 의식을 다시 습관으로 안착시키자는 취지다. 첫 회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오토바이의 보행로 통행 실태를 조명했다.

오토바이, 인도 보행자 사이 ‘칼치기’… 시민들 “부딪힐까 겁나”
로드 리부트: ‘사망 제로’를 향해 〈1〉 인도를 보행자에 돌려주자
폭 2m 길 보행자 어깨 스칠듯 질주… “속도 빨라 아이들 크게 다칠라 걱정”
5곳 시범단속, 하루 32건꼴 적발
보행로 인명사고 매년 200명 이상… “라이더 인식변화 교육 시급” 지적
배민, 연 1만 명 라이더 안전교육
“저기 좀 봐.”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 사거리의 보행로에서 헬멧을 쓰던 배달 기사가 머리 위를 가리키며 동료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가 가리킨 건 경찰이 설치한 ‘이륜차 보행로 통행 단속 장비’ 안내 표지판이었다. 잠시 표지판을 응시하던 운전자는 이내 오토바이에서 내려 차체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건널목을 건넜다. 오토바이를 끌고 이동하는 이른바 ‘끌바’였다. 이날 취재팀이 오후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현장에서 목격한 18대의 오토바이 중 단속 장비를 의식해 끌바를 선택한 운전자는 그가 유일했다. 나머지 17대는 보행자 사이를 누비며 보행로를 차로처럼 질주했다.

● 단속 비웃는 ‘보행로 폭주’, 1시간에 17대 주행

이 사거리는 평소 오토바이 관련 사고와 보행로 통행 민원이 빗발치는 곳이다. 경찰청이 지난달 16일부터 번호판 인식 단속 장비를 시범 설치해 운영 중인 전국 5개 거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장의 실태는 ‘단속’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했다.

보행로를 침범한 이들은 대부분 배달용 스쿠터 운전자였다. 배달 시간을 단 몇 초라도 줄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차로와 보행로 경계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음식점까지 걸어가는 게 원칙이지만, 이들은 보행자의 어깨를 스칠 듯 지나쳐 가게 문 앞까지 오토바이를 몰았다.

현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한 스쿠터는 가게에서 음식을 픽업한 뒤 폭 2m 남짓한 좁은 보행로를 20m 이상 주행해 도로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걷던 남성이 급히 멈춰 서며 아이를 자기 몸 뒤로 숨기기도 했다. 보행자의 등 뒤 사각지대에서 빠른 속도로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앞에서 시민들은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회사원 허모 씨(39)는 “보행로나 건널목에서 오토바이가 옆을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속도도 빨라 어린아이들이 크게 다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러한 ‘무법 주행’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한 달간 이곳 영등포시장 사거리에서만 총 415건의 보행로 통행이 적발됐다. 울산 중구 병영 사거리(457건)를 포함해 서울 중랑구 상봉역 앞 교차로(68건), 경기 수원시청 앞(19건) 등 전국 5개 지점의 전체 적발 건수는 978건에 달했다. 단속 장비가 번호판을 찍고 있는데도 하루 32건꼴로 위반이 이어진 셈이다.

● 가중 처벌에도 사고 속출, ‘자토바이’ 사각도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 인근 보행로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행인들 사이를 피해 주행하고 있다. 차량은 보행로로 통행할 수 없지만, 이를 어기고 보행로로 다니는 이륜차랑이 적지 않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 인근 보행로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행인들 사이를 피해 주행하고 있다. 차량은 보행로로 통행할 수 없지만, 이를 어기고 보행로로 다니는 이륜차랑이 적지 않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현행 도로교통법 제13조는 차량 운전자의 차도 통행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이를 어기고 보행로로 주행할 경우 벌점 10점에 범칙금 4만 원(과태료 5만 원)이 부과된다. 단순 법규 위반을 넘어 보행로에서 보행자와 충돌해 인명 피해를 내면 ‘12대 중과실’에 해당해 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런데도 보행로 위 인명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보행로에서 오토바이와 부딪혀 다친 사람은 최근 5년간 매년 200명 이상 발생했다. 2021년과 2022년, 그리고 지난해엔 각각 1명의 보행자가 오토바이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새로운 사각지대도 등장했다. 이른바 ‘자토바이’로 불리는 고출력 전기자전거다. 외형은 오토바이와 흡사하지만 번호판이 없어 현재의 지능형 단속 장비로는 적발이 불가능하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상 최고 속도가 시속 25km 미만인 기기는 자전거로 분류돼 번호판 부착이나 보험 가입 의무가 없다.

● “단속은 임시방편, ‘기본’ 세우는 교육 시급”

경찰은 6월까지 주요 지점에서 번호 인식 장비로 오토바이의 보행로 통행 위반을 시범 단속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효과를 분석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교통사고 사망자를 2000명대 이하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오토바이의 보행로 침범을 비롯해 일상에서 당연시되는 위법 운전 습관이나 ‘빨리빨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력한 단속만큼이나 운전자의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주재홍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위원은 “전국적으로 오토바이 운전자를 실질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 운전 습관 자체를 교정하는 교통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배달 서비스를 빠르게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오토바이의 보행로 침범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은 경기 하남시에 ‘배민라이더스쿨’을 운영하며 지난해 5700명에 이어 올해 1만 명의 라이더에게 안전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교육 과정에는 보행로 주행의 위험을 경고하고, 실제 현장에서 끌바를 습관화하는 실습이 포함된다. 도로교통공단도 지난해 배달 플랫폼과 함께 소속 라이더 등 2만5260명을 대상으로 안전운전 교육을 진행했다. 14일 교육에 참여한 마모 씨(61)는 “범칙금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보행로 주행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권구용 사회부 기자 9dragon@donga.com
▽김윤진(국제부) 임유나(산업2부) 주현우(경제부)
최효정(사회부) 한채연(산업1부) 기자



#오토바이#보행로 통행#단속 장비#배달 산업#교통사고#보행자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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