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있기에 대한민국 한바퀴 4544km 돌았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8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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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으로 올해 75세인 임정국 정태성 김익원 최동주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021년 3월부터 대한민국 한 바퀴 걷기에 나섰다. 시간 날 때 모여서 걸었고, 올해 4월 4544km 대한민국 한 바퀴 완보에 성공했다.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 임정국 정태성 최동주 김익원 씨(왼쪽부터)가 대한민국 한 바퀴 4544km를 걷다 포즈를 취했다. 75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2021년부터 대한민국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해 올해 4월 완보에 성공했다. 정태성 씨 제공.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모여서 뭘 못 하게 막았죠. 저흰 살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흰 바이러스와 무관한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걷기로 했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의기투합했고, 결국 함께 이뤘다는 것에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던 정 씨를 빼고 나머지 세 명은 사업을 하며 자주 만나면서 산행하던 사이였다. 우연한 기회에 4명이 당구를 쳤고, 자연스럽게 매주 1~2차례 서울 근교 대모산과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등을 올랐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어렵던 때 동해안 해파랑길이 잘 조성됐다고 얘기하다가 “그럼 대한민국 한 바퀴를 돌자”고 뜻을 모았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 대한민국 산을 거의 다 탄 임 씨가 대장을 맡았다. 임 씨는 “요즘 유행하는 100대 명산을 정해 놓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최소 100대 명산 70봉 이상은 올랐다”고 했다.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 정태성 임정국 김익원 씨(왼쪽부터)가 서울 대모산을 즐겁게 오르고 있다. 75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2021년부터 대한민국 한 바퀴 4544km를 돌기 시작해 올해 4월 완보에 성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음은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을 지냈던 정 씨의 말이다. “이런 거 있죠. 은퇴하고 친구들 만나니 너무 좋았어요. 대학 및 해외에서 근무하던 시절, 운동을 위해 산을 탔지만 친구들하고 전국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냥 기분이 좋았어요. 걸으면서 얘기도 많이 했죠. 걷는 것의 의미,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갑론을박 싸우면서도 내린 결론은 함께 걸으면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021년 부산 오륙도를 출발해 강원 고성통일전망대까지 해파랑길 750km, 2022년 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파랑길 1470km, 2023년 해남 땅끝마을에서 인천 강화평화전망대까지 서해랑길 1800km, 2024년 강화평화전망대에서 고성통일전망대까지 DMZ 평화의 길 524km.

“전국을 걷다 대한민국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해파랑길은 주요 해수욕장과 일출 명소가 있고, 관동팔경을 두루 거치는 해변길이 아름다워요. 남파랑길은 한려수도와 다도해 섬들이 낭만적입니다. 서해랑길은 해 지는 바다를 보며 갯벌 속 생태계도 느낄 수 있죠. DMZ평화의 길은 아픈 역사의 상흔도 있지만 살아 있는 생태자원을 만날 수 있죠.”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 임정국 최동주 김익원 정태성(왼쪽부터)가 강원 고성 대진항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태성 씨 제공.
“코로나19 시절엔 걷다가 식사 시간이 됐는데 식당이 없어 낭패당한 적이 많았어요. 시골엔 식당도 별로 없는데 있는 식당도 문을 다 닫았던 시절이죠. 잠을 잘 데가 없어서 이집 저집 두드리고 다니기도 했죠. 그 지역 이장을 찾아가 신세 지기도 했어요. 최근엔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건물 지어서 침대 10여개 넣은 시설이 생기기도 했는데 예약하지 않으면 재워주지도 않아요. 걷다 보면 꼭 제날짜를 마추긴 힘들거든요.”

이들은 대한민국 한 바퀴를 ‘K둘레길’로 명명했고, “전국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K팝, K푸드, K영화에 이어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약 4000km보다 길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의 100배 이상이다. 해파랑길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맞먹는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두루누비에 ‘코리아 둘레길’로 자세하게 코스가 설명돼 있다.

“대한민국 한 바퀴를 돌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게 가장 뿌듯했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큰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요. 그리고 뭐든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어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70세 훌쩍 뛰어넘은 우리도 해냈다고요.”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 임정국 정태성 최동주 김익원 씨(왼쪽부터)가 강원 양양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태성 씨 제공.
제일 길게 함께한 게 13박 14일. 개인 일정을 맞추다 보니 이후 짧게는 2박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을 걸었다. 총 함께한 기간이 180일이다. 배운 것도 많다. 80세를 향해 가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에 식사, 8시에 출발, 오후에도 6시에 걷기 종료, 7시 식사, 8시에 잠자리 드는 6·7·8’ 원칙을 지키며.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 성취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본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시작 전에는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죠. 함께하니 기우였습니다. 함께 걷다 보니 따라갈 수 있었요. 함께 걷지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자신과 몇 시간씩 대화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지?’ ‘잘 산 것인가?’ ‘향후 어떻게 살지?’ 숱한 고민을 하면서 제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느꼈습니다. 물론 ‘후회한 것도 있지만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운도 좋았다고 했다. “저희가 180일을 걸었는데 비를 딱 두 번만 맞았어요. 이젠 저희도 나이가 있어 혹서기, 혹한기를 피해서 갔는데 그래도 비를 두 번만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죠. 대한민국 둘레길의 명소도 다 가봤죠. 걷는 길목에 있는 맛집도 다 가봤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어요.”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 김익원 정태성 임정국 씨(왼쪽부터)가 서울 대모산을 즐겁게 오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하지만 대한민국 한 바퀴를 걸으면서 농어촌의 현실도 그대로 느꼈다. 노인들만 있고,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과 학생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임 씨는 “한 지역에서 노인을 만났는데 ‘학교도 멀고, 병원도 멀다. 누가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겠냐’고 하더라”고 했다.

이들 4인방은 산행 및 걷기 위해 평소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도 한다. 이들은 “4년 넘게 걷다 보니 해가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헬스클럽에 간다. 뭐 가금 역기를 들기도 하지만 근육운동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돌리는 유연성 운동을 주로 한다. 그거라도 해야 걷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들은 고교 전체 산악회 ‘휘산회(휘문고 산악회)’, 고교 졸업 동창 산악회 ‘60휘산회(60회 휘문고 산악회)’ 등 매주 말 산행하는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따로 모여 산을 타거나 걷고 있다. 과거같이 하루 종일 산행하지는 않는다. 3~4시간 타고 식사하고 헤어진다.

서울 휘문고 60회 동기동창 임정국 정태성 김익원 씨(왼쪽부터)가 서울 대모산을 오르다 포즈를 취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들 휘문고 4인방은 요즘도 대한민국을 주제별로 걷고 있다. 경북 청송에서 강원 영월까지 외씨버선길, 강원 치악산 둘레길, 경기 양평 물소리길…. 임 씨는 “전국에 걷기 코스가 정말 많다.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다”고 했다.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면서 얻는 성취감, 안 해보면 몰라요. 한 발씩 걸어 4544km를 다 걸었잖아요.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지만 정도 많이 들었어요. 사실 친구들 없었으면 못 했죠. 평생 함께 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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