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걸렸을까’ 자책않고 긍정하며 투병하니 췌장암 이겨내”[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8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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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고려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췌장암 이충구 씨
복통-흑변 발생,병원에서 암 발견… 생존률 20% 췌장암 1.5기 진단
암 덩어리, 혈관과 닿아 수술 곤란… 7회 항암치료로 크기 작아져 가능
취미였던 음악 하며 ‘즐겁게’ 투병… 추가 항암 6회도 무사히 마쳐
치료 5년 되는 12월 ‘완치’ 예상

50대 이충구 씨(오른쪽)는 최악의 암이라는 췌장암에 걸렸지만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투병하며 이겨내고 있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이 씨가 12월이면 완치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50대 이충구 씨(오른쪽)는 최악의 암이라는 췌장암에 걸렸지만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투병하며 이겨내고 있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이 씨가 12월이면 완치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2013년 8월, 40대이던 이충구 씨(55)에게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다. 이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2020년까지 약 7년간 약물 치료를 이어갔다.

이 씨는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건강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건강검진도 적극 챙겼다. 덕분에 2020년 8월에는 담낭(쓸개) 벽이 두꺼워진 사실도 발견했다. 의료진은 당장은 괜찮으니 추적 관찰하자고 했다. 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4개월 후에 일이 터졌다.

● 궤양인가 싶었는데 췌장암

그해 12월, 복통이 심해졌다. 이틀 동안 혈변 일종인 흑변이 나왔다.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실로 갔다. 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궤양이 확인됐다.

심혈관 스텐트를 삽입하고 장기간 항혈전제를 복용하면 간혹 부작용으로 십이지장에 궤양이나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이 씨가 그런 사례로 여겨졌다. 그래도 주변 장기 이상 여부는 확인해야 했다. 의료진은 복부 컴퓨터 단층(CT) 검사를 진행했다. 췌장에서 작은 혹이 발견됐다. 이재민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췌장암을 의심했다.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예상한 대로 암이었다. 불과 4개월 전에 시행한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교수는 “췌장암은 예후가 가장 안 좋은 암이면서, 동시에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른 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건강검진을 시행해도 췌장 CT 검사를 하지 않으면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씨에게 나타난 증세 중 흑변은 췌장암과 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복통은 췌장암 증세 중 하나다. 주로 명치에 통증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명치 주변과 등으로 통증이 퍼져 나간다. 이 교수는 “이 씨의 통증은 배로 국한돼 있어 십이지장궤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씨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이 무렵 그는 부친상을 비롯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체중이 쭉쭉 빠졌다.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체중 감소라고만 여겼다. 이 교수는 “췌장암 초기에는 아무런 증세가 없긴 하지만, 당시 체중 감소가 암의 징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당뇨병을 앓았고 가족력도 있었다. 당뇨병은 췌장암 유발 인자 중 하나다. 가족력이 있다면 췌장암 발병 위험도는 더 올라간다. 이 경우 췌장 건강 상태를 자주 확인하는 게 좋다.

● 수술 힘들어 항암치료부터

췌장암 크기는 2.4cm였다. 아주 크지는 않은 편. 다행스럽게도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도 않았다. 이러면 췌장암 1기다. 다만 이 씨의 경우 림프절이 정상보다 커져 있었고, 주변 혈관까지 암이 침투해 있었다. 이 때문에 1기에서 2기 사이로 암의 병기(病期)를 정했다.

췌장은 크게 머리와 몸체, 꼬리 부분으로 나눈다. 발생 건수로만 놓고 보면 머리 부위에 암이 발생하는 환자가 더 많다. 이 씨는 몸체와 꼬리 부분에 발생했다. 수술은 가능한 상황. 문제는 복강 동맥과 간으로 연결된 간문맥에 암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먼저 항암치료를 해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결정에 따라 2주마다 2박 3일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다. 총 12회로 예정하고 그날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첫 치료를 마쳤을 때 백혈구 안에 있는 호중구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 경우 감염 등의 위험이 커진다. 다행히 용량과 약제 투입 간격을 조정해 부작용을 해결했다.

2021년 2월 CT 검사에서 림프절 비대가 호전된 게 확인됐다. 췌장암 종양표지자인 CA 19-9 수치도 감소했다. 종양표지자는 암을 의심할 수 있는 척도다. 이 수치가 떨어졌다면 암 위험도도 낮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해 3월 CT 검사에서는 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암의 혈관 침습이 크게 줄었다. 췌장암 덩어리 자체가 2.4cm에서 1.9cm로 줄었다. 항암치료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의료진은 12회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앞당겨 종결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외과와 협진해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항암치료를 7회로 끝내고 수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췌장 일부-담낭 절제

이충구 씨 췌장암 수술을 집도한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이충구 씨 췌장암 수술을 집도한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그해 4월, 이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유영동 고려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집도했다. 종양이 췌장 몸통과 꼬리 부위에 있는 데다 간문맥과 닿아 있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유 교수는 배를 여는 수술을 택했다. 배꼽 상부 명치 부위에서부터 25cm 정도 절개했다.

수술은 2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혈관에 붙어 있는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는 데 6시간이 소요됐다. 유 교수는 “봉합을 비롯해 추가 조치를 하느라 수술 시간이 더 길어진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떼어낸 암의 크기를 재 보니 0.5cm였다. 당시 전이가 의심되던 담낭도 함께 절제했는데, 조직검사를 해 보니 여기서도 암이 발견됐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암을 제거한 셈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수술 후 재발률이 60%를 웃돈다. 이 때문에 수술 후 항암치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해 5월부터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한 달에 3회씩, 총 6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수술 전 항암치료 때와 달리 당일 치료한 뒤 바로 퇴원하는 방식이었다.

그해 10월, 모든 항암치료를 끝냈다. CA 19-9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수술 합병증도 없고 소화 기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22년부터는 3개월 간격으로 CT 검사를 했고, 이후 간격을 늘려 요즘은 6개월마다 검사하고 있다.

● ‘역발상’으로 암과 싸워

암 치료 후 5년이 지나면 완치로 규정한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20% 내외다. 가장 치료가 힘든 암이다. 이 교수는 “올 11월 평가에서 재발 없이 안정된 상태가 확인된다면 만 5년 만인 12월에 완치 판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무난히 완치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힘든 상황이 적잖았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이 씨 심정은 어땠을까. 이 씨는 “딱 3초 동안 눈앞이 까매졌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어서 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의료진 처방을 충실하게 따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항암치료는 쉽지 않다. 이 씨도 그랬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갔고, 음식 삼키기도 쉽지 않았다. 식판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동치미를 함께 먹으면서 이겨냈다. 한때 100kg이 넘던 체중은 67kg로 뚝 떨어졌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단 한 차례도 항암치료를 거르거나 미루지 않았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잘 참아냈다. 이런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역발상’으로 항암치료에 임했다. 암에 걸리기 전, 이 씨는 본업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 작업을 막연하게 미루고 있었다. 암과 싸우면서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인들과 함께 음원을 만들고 발표하는 ‘악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소 못 했던 거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즐거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좌절하기보다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즐거운 일을 하면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췌장암은 가장 생존율이 낮은 암이지만, 최근 여러 치료제가 나오고 있고 의료 기술도 발달하고 있어 치료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환자들의 긍정적 투병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급성 심근경색#췌장암#항암치료#당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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