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싱가포르 회담의 7주년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서신 교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1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싱가포르=AP 뉴시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시도한 정황이 알려져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재집권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의 가자전쟁, 이란 비핵화 협상 같은 외교 의제를 조속히 마무리 짓겠다고 장담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집권 1기 때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북-미 정상의 대화 카드를 꺼내 외교 치적을 쌓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 측이 순순히 대화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11일(현지 시간) 고위급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를 목표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낼 친서의 초안을 작성했고, 친서를 전달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뉴욕의 북한 외교관들이 수령을 거부했다”라고 보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12일 러시아 연방 설립을 기념하는 ‘러시아의 날’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에서 “조러(북-러) 친선 관계는 피로 맺어진 두 나라 장병들의 우애로 더 굳건해졌다”고 밝혔다. 보란 듯 러시아와의 ‘혈맹(血盟) 관계’를 과시한 것이다.
● 백악관, ‘서신 발송 시도’ 보도 부인 안 해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서신 발송 시도를 확인해달라는 기자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서신 교환에 열려 있다. 2018년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진전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서신 교환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답하도록 남겨 두겠다”고 했다. 이처럼 공식 회견에서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은 자체가 사실임을 인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인 2018년 6월 싱가포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차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러브레터’(연애편지)로 불린 친서도 27통 주고받았다. 12일은 싱가포르 회담이 개최된 지 7년을 맞는 날이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 이 이를 염두에 두고 김 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레빗 대변인이 싱가포르 회담을 콕 집어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4월 “(김 위원장과) 소통이 있다(there is communication).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시 그는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어느 시점엔 뭔가를 (북한과) 하게 될 것”이라고도 자신했다.
그는 올 1월에도 김 위원장을 두고 “종교적 광신도(religious zealot)가 아니다. 똑똑한 남자”라고 추켜세웠다. 석 달 후에도 “매우 똑똑한 남자”라고 했다.
● 푸틴 ‘뒷배’ 확보한 김정은, 대화 응할지 미지수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對)북한 제재 완화 등의 ‘당근’을 제시하지 않고 ‘선(先) 대화 재개-후(後) 협상’ 기조를 채택한다면 북한이 화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노딜(No deal)’로 끝난 2019년 하노이 회담을 ‘치욕’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6년간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은 트럼프 집권 1기 때보다 대폭 강화됐다. 북한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비핵화 협상에 나서더라도 북한이 요구할 반대급부의 눈높이가 훨씬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확실한 대북정책 노선 변화를 선언하지 않는 한, 친서 몇 건에는 호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일 것”이라며 “과거 하노이 노딜의 굴욕을 반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는 북-러 관계도 변수다. 북한군은 우크라이나에 최소 1만1000명을 파병했고 이를 통해 러시아와의 각종 군사,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확보한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트럼프 1기 때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느낄 수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이번 축전에서 러시아를 “형제국가”로 칭했다.
다만 양국 정상의 의지만 있다면 북-미 대화의 문이 언제든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키스 루스 미국 전미북한위원회(NCNK) 사무국장은 12일 최종현학술원과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가 출간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김 위원장과의 대화 재개 무대를 마련했다”며 “양측의 정기적인 접촉과 신뢰 형성이 이뤄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 위원장이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하는 광경을 전 세계가 지켜보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더그 밴도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에만 집착하지 말고 북한의 군비 통제, 군사 위협 축소 등 ‘봉쇄와 억지’ 전략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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