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반(反)이민 기조를 재확인했으며, 다른 국가들 역시 이러한 기조에 동참할 것을 종용했다. 기후 위기에 대해서는 역대급 사기라고 주장했고, 유엔 체제에 대한 불신도 공공연히 드러냈다. 2025.09.24. 뉴욕=AP/뉴시스
6년 만에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 등 국제 사회가 추진하는 기후 위기 대응 등을 지적하며 “당신 나라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독설을 날렸다. 외신은 이번 연설이 자유와 평화 등 국제사회가 공유할 기본 가치를 알리는 것이 아닌 미국 내 ‘트럼피언(트럼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많은 이가 내가 노벨평화상 받으라 말해”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계획된 15분을 훌쩍 넘겨 56분간 연설했다. 트럼프는 연설 내내 유엔에 대한 비판, 기후위기에 대한 지적, 자신의 강력한 이민정책 등을 설파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초반 집권 2기 행정부 성과를 홍보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좌파 진영의 실패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로잡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유엔연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평가다.
그는 “오늘 내 행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가 됐으며 그 어느 나라도 근접조차 하지 못한다”며 “미국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 가장 강력한 경제, 국경, 군대, 우정, 정신을 지닌 축복받은 나라다. 지금이 진정 미국의 황금기”라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욕심을 내는 노벨 평화상을 염두에 둔 듯 전쟁 종식에 자신이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이 해야 할 일을 내가 해야 했다는 게 안타깝다”며 “나는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고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과 협상했지만, 유엔으로부터 협상 타결을 돕겠다는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전쟁을 막고 끝내는 일에 너무 바빠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유엔이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유엔의 목적이 무엇인가. 유엔은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허한 말뿐이고 이는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모두가 이 모든 업적 하나하나에 대해 내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며 “나에게 진정한 상은 수백만명이 끝없이 이어지는 영광 없는 전쟁에서 더 이상 죽지 않고, 아들과 딸들이 살아남아 부모와 함께 자라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예산 삭감한 트럼프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 기간 반트럼프 시위대가 42번가 교차로에서 시위하고 있다. 2025.09.24. 뉴욕=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에 대한 지적은 기후위기 주제로 옮겨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저감 정책에 대해 “전세계에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녹색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며 “탄소 발자국은 악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꾸며낸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EU의 이민자 수용 정책과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겨냥해 “당신들의 나라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며 독설을 날렸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유엔을 자신의 정치적 세계관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 BBC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사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엔 예산을 삭감하는 등 이미 유엔에 대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트럼프가 일방적인 주장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이번 총회에서 미국의 유엔 자금 삭감을 비판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유엔 회비와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의회에서 책정한 10억 달러의 자금을 삭감하고 지난해 냈어야 할 회비도 아직 내지 않고 있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원조 삭감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와 같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빼앗긴 미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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