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방정책 설립 주도 콜비 차관
日-호주 당국자 만난 자리서 압박… “방위비 확대-집단방위 노력”도 강조
美정부, 이르면 9월 새 국방전략 발표…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요구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일본과 호주에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전쟁 발발 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보도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에 양안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미국의 국방정책 수립을 주도했으며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을 강조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또한 동맹국에 “방위비 지출 확대 및 집단 방위를 위한 노력을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FT는 전했다. 대만 방어와 중국 견제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다.
빠르면 9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새 국방전략(NDS)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이 이를 통해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또한 방위비 증액은 물론이고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 요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 콜비 압박에 日-濠 관계자 눈살 찌푸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
FT는 소식통 5명을 인용해 최근 콜비 차관이 일본과 호주 당국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미국과 전쟁에 돌입하는 시나리오에 대한 각국의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으라고 계속 요구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미국조차 대만 유사시 개입하겠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동맹국에만 이런 요구를 하자 일본과 호주가 크게 놀랐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은 콜비 차관의 이 요청에 “일본과 호주 및 다른 동맹국 대표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했다. 다만 그가 한국에도 비슷한 요구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보도 후 논란이 거세지자 콜비 차관은 ‘X’에 “일부 동맹국이 솔직한 대화를 반기지 않을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이행을 위해 동맹국들에 방위비 지출 및 집단 방위와 관련된 노력들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경 방침을 고수했다. 그는 미국의 부담을 나눠 지자고 요구하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 모두에 적용된다고도 했다.
일본과 호주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조 바이든 전 행정부에 비해 동맹에 우호적이지 않으면서 요구하는 것만 많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콜비 차관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9월 미국 영국 호주가 체결한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의 재검토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조선 역량 약화로 미국이 쓸 핵동력 잠수함조차 부족한 상황인데 왜 오커스를 통해 호주에 핵잠수함을 판매해야 하느냐는 취지다. 그는 최근 일본에도 거듭 방위비 증액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또한 지난달 18일 상원 청문회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요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방위비 지출 기준이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올 5월 온라인 세미나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라며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주요국에 주둔한 미군의 유연성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국방부가 조만간 발표할 NDS에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정책의 변화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길지도 관심이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후 모든 미국 행정부는 겉으로는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대만에 미국산 최신 무기를 지원해 왔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인민해방군 건군 100년이자 집권 3기가 끝나는 2027년 중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면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기하고 대만을 적극 방어하겠다는 ‘전략적 명료성(strategic clarity)’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올 5월 콜비 차관에게 “8월 31일까지 NDS 최종본을 제출하라”고 주문한 상태다. 워싱턴포스트(WP) 또한 헤그세스 장관이 국방부 간부들에게 배포한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에 동맹국 방위비를 증액해 북한, 러시아, 이란 대응을 이들에게 맡기자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이 지침은 NDS의 토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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