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300명 美출국 12시간 전, 이유 안 밝힌채 “전세기 못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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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장 한국인 구금]
갑작스러운 공지에 구금소 앞 혼란… “일상복 환복 출소 준비” 전해지다
구금소 측 취재진 접근도 통제… “더 다가오면 감옥갈 수 있다” 경고
美, 공항 이동할때 손 결박 요구… 韓, 수용할수 없다는 입장 밝혀

구금 한국인 태우고 올 전세기 출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해 구금 중인 한국인 300여 명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가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국민들의 10일(현지 시간) 출발은 미국 측 사정으로 어렵게 되었다.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 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구금 한국인 태우고 올 전세기 출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해 구금 중인 한국인 300여 명을 태울 대한항공 전세기가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국민들의 10일(현지 시간) 출발은 미국 측 사정으로 어렵게 되었다.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 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미국 동부 시간 10일 오전 3시(한국 시간 10일 오후 4시)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소 앞. 새벽 시간인 데다 구금소가 작은 시골 마을 외곽에 있는 터라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만 황색 불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 적막은 갑작스레 외교부에서 발송한 공지로 깨졌다. 미국 측 사정으로 이곳에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의 석방 및 귀국이 이날 어렵게 됐다는 거였다.

현장을 지키던 한국과 미국 취재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구금소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구금소 관계자가 가로막았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더 접근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정부는 “미국과 조속한 출국을 위해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연기 이유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만 정부 안팎에선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를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내의 알력 다툼이 벌어졌을 가능성, 또 근로자들의 석방 형식 및 공항 이송 방식 등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갑작스러운 연기 통보

이날 구금소 현장에선 늦어도 현지 시간 10일 오전 4∼5시(한국 시간 10일 오후 5∼6시) 전후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버스를 나눠 타고 차로 약 5시간 거리인 애틀랜타 국제공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구금소에 있는 근로자들이 귀국을 앞두고 수용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옷을 바꿔 입는 등 출소 준비가 진행 중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풀려난 근로자들을 태우기 위해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대형 버스의 모습도 포착됐다.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 또한 취재진에게 “출소를 위한 상황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날 구금소 측에선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소지품도 나눠주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지품을 나눠주던 교도관은 전날 오후 11시경 모두 퇴근했고,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 중 약 70∼80명은 소지품을 못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갑작스러운 석방 및 귀국 연기 소식이 전해졌고, 근로자들을 태운 버스가 나왔어야 할 구금소 철문은 굳게 닫혔다. 구금소 관계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취재진이 도로를 건너 구금소 주차장으로 접근만 해도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접근을 통제했다.

● 석방-공항 이동 방식 등 한미 이견 가능성

외교부는 일정 변경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10일 이동을 목표로 한 것일 뿐 확정된 날짜가 아니었고 협의를 하다 보면 최종 움직이는 데는 변동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세기 출발 예상 시간이 15시간 정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미국 측이 갑자기 중단 요청을 한 것은 양국 합의가 마무리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우선 구금자들의 석방 방식을 두고 이민 당국이 제동을 걸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구금자 전원을 ‘자진 출국’시켜야 한다는 방침이지만 미국 측은 일부 구금자의 ‘추방’이 불가피하다고 맞서 온 것으로 알려졌다. 9일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 또한 하루 전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이 구금자들이 우리 측이 주장하는 ‘자진 출국’이 아니라 “추방(deportation)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미국 일부 법집행 기관에서 추방에 해당하는 근로자들이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어 마지막 협상을 하고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자진 입국 형식으로 전원 전세기로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정부는 미국 측이 구금자들이 애틀랜타 공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손을 결박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트럼프 행정부 내 갈등 가능성도

불법 이민 단속 주무부처인 미 국토안보부와 비자를 발급하고 우리 외교부와 교섭하는 미 국무부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가 반영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체류 비자를 발급하는 기관은 국무부지만, 발급받은 비자를 가지고 미국 입국 여부를 판정하는 곳은 국토안보부다.

놈 장관을 포함해 국토안보부 내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을 기치로 내세우는 강경파들이 많다. 반면 국무부는 이번 사태의 초기부터 이민 당국의 과도한 법 집행에 대한 우리 정부의 유감 표명을 수용했다. 또 한국의 대미 투자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주목해 해결책 마련에 집중해 왔다.

공교롭게도 당초 9일 열릴 예정이었던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의 워싱턴 회동 또한 10일 오전으로 하루 늦춰졌다. 이 역시 트럼프 행정부 내 의견 충돌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과 만나기 전 취재진에게 “최단 기간 내에 구금된 국민들을 구해내겠다”고 밝혔다.

#한국인 구금#포크스턴#ICE#구금소#구금자 석방#트럼프 행정부#손 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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