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그 사진’은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다 [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7일 12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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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두가 에반 부치의 사진을 ‘추앙’할 때, 마음 한편으론 퓰리처상 수상은 어려울 것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지나치게 신성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논란과 평가를 뒤로 한 채, 이 사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보도사진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지마 섬에 성조기를 꽂은 미 해병대의 모습이 상징으로 남은 건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포착한 AP통신의 조 로젠탈은 1945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그 자체로 힘이 있지만,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단순히 ‘기록’되거나, 오래도록 ‘기억’된다.

2024년 7월,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유세장에서 총격을 당했다. 그날, 전 세계는 단 한 장의 사진에 주목했다. AP통신의 에반 부치가 촬영한, 피를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 채 일어서는 트럼프의 모습이었다. 그의 등 뒤로 성조기가 휘날렸다. 로우 앵글, 삼각형 구도, 붉은 피, 파란 하늘—모든 요소가 맞물리며 그는 마치 ‘불사조’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5년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의 영예는 부치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그는 최종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수상자는 뉴욕타임스의 더그 밀스였다. 그가 포착한 장면은 트럼프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탄환의 흔적이 프레임 안에 선명하게 담긴 사진이었다. 퓰리처 심사위원단은 “총격과 그 궤적이 정확히 프레임 안에 잡힌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 암살 미수 순간 ‘최고의 사진’으로 에반 부치의 작품을 꼽는다. 조금전 기자와 함께 있던 타사 사진기자들도 퓰리처상 결과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대중의 인식과 심사 기준 사이에 존재하는 이 괴리는, 보도사진의 ‘좋고 나쁨’이 단순한 미학적 요소나 극적 연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판단은 뉴스의 시의성, 기술적 완성도,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 맥락에 의해 좌우된다.

지난해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도중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총알 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더그 밀스 뉴욕타임즈 기자는 총알의 궤적을 포착해 2025년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의 수상자가 됐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 제공
지난해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도중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총알 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더그 밀스 뉴욕타임즈 기자는 총알의 궤적을 포착해 2025년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의 수상자가 됐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 제공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강경 행보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연방 정부의 규모를 축소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했으며, 외교적으로는 멕시코와의 국경 문제, 캐나다·중국과의 관세 갈등으로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를 ‘불굴의 영웅’처럼 묘사한 이미지는 퓰리처 심사위원들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2024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한 장의 사진은 미국 대선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그러나 상은 다른 사진에 돌아갔다. 어쩌면 이번 퓰리처상 결과가 보도사진이 때로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정치적 언어’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이 아닐까?
#트럼프#미국 대선#보도사진#퓰리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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