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카메라 활용법…그의 사진은 왜 강한 느낌일까 [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6일 1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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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트럼프 사진

지난 달 트럼프와 젤렌스키 회담 . AP 뉴시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연일 보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달 28일 백악관으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초대한 후 기자들 앞에서 설전을 벌였다. 손가락질을 하고 인상을 쓰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가 이전에는 거의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두 정상의 환담장에는 미국 백악관의 풀(pool) 기자들과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온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고 앉거나 서 있었다. 전세계로 생중계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두 정상이 싸우는 모습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크라이나의 언론 플레이도 만만치는 않다. 군복을 연상하게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검정 옷과 군화 스타일의 신발은 외교 관례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대통령에게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한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다음 날 자체 소셜미디어 계정에 ‘이것이 우리의 정장이다’라며 8장의 사진을 올린 것도 ‘비상한’ 대응이었다. 전쟁터의 잿더미 속에서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 소방관, 피가 흥건하게 묻은 가운을 입은 의사, 온 몸을 위장한 군복의 군인들 모습의 사진이었다.

개인적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보여주는 모습은 7단계 쯤 되는 마라탕을 먹는 느낌이다. 혀를 마비시킬 정도로 매운 맛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마라탕처럼 사진이, 그것도 외교 무대에서 나온 사진이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강한 사진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점잖아 보이는 유럽 지도자 10명이 모인 이미지를 합쳐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매운 맛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 트럼프 사진의 특징

트럼프의 이미지는 점점 강해지고 독해지고 있다. 동맹이건 뭐건 안중에 없고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정책 변화와 그에 따른 발언 수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진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4일 (현지 시간) 미국 의회 연설장의 트럼프 대통령. 초망원렌즈로 촬영됐다. AP 뉴시스
한달여 지난 트럼프 2기의 사진 취재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사진기자를 고를 수 있는 구조로 변화 중

1. 트럼프는 미국 AP통신 등 전통 유력 매체들이 과점하고 있던 백악관 취재 형식에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총탄을 맞은 채 성조기 아래에서 포효하던 트럼프의 모습을 포착해 트럼프의 영웅 이미지를 강화시켜줬던 AP 사진기자도 최근 백악관 취재에서 배제되었다. 대신 백악관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동취재(pool) 방식으로 사진 취재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 밑에서 찍거나 아주 멀리서 찍는 전통

2. 전통 유력 매체들의 과점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많은 사진기자들이 트럼프를 취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좁은 공간이라는 특성을 이유로 이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소수의 사진기자와 영상기자들만이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난 3일 기자회견 모습. 사진기자들이 트럼프 바로 아래서 찍은 사진. AP 뉴시스

사진기자들은 다른 카메라에 걸리지 않도록 바닥에 앉아 트럼프를 ‘우러러 보는’ 방식으로 촬영한다. 눈높이나 사다리 위에서 아래로 찍는 방식에 비해 주인공의 위세를 강화시키는 앵글이다.

백악관 오피스가 아니라 4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열린 첫 연설의 경우 의원들 뒤쪽 관중석에서 기자들이 대포 같은 초대형 망원렌즈를 사용해 대통령을 바라보게 된다. 배경은 아웃포커스 되고 주인공에만 초점이 맞는 방식이다. 주제가 부각되고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 몸에 밴 연기 실력

트럼프 대통령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 동작이 크다. 얼굴만 찍는 것보다는 손 동작이 있는 인물 사진이 힘이 있는데 트럼프는 한 손도 아니고 두 팔을 움직인다. 쌍거풀과 함께 또렷한 이목구미도 사진에 힘을 보태는 요소이다.

TV쇼 경력에 1기 행정부를 이미 경험했던 트럼프가 카메라를 다루는 솜씨는 수준에 올라 있을 수 밖에 없다.

● 얼마나 매운 사진이 앞으로 우리에게 올까

자신을 찍는 사진기자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한편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 같다. 자신의 지지자를 결속시키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교 무대에서 다른 나라 정상을 압박하는 사진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이익과 관련된 사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점점 매워질지도 모르는 원맨 쇼가 앞으로 4년이나 이어진다는 사실과 함께 혹시 그런 사진들이 전세계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교범이 되는 건 아닐지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총탄을 맞는 순간을 촬영했던 AP통신 사진기자의 최근 백악관 취재 사진. 트럼프 대통령 옆으로 접근이 차단된 채 대변인 브리핑만 취재하고 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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