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하버드에 유학생 등록 금지령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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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 근절 거부에 초강수
하버드 “외국인 학생 차단 불법” 소송

하버드대 학생들 “이스라엘 비판 간섭 말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대학 당국이 이스라엘 정부 비판과 학술 활동을 억제한다”며 항의하고 있다. 하버드대가 ‘학내 반(反)유대주의’를 더 강경하게 단속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불응하자 미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22일 박탈했다. 케임브리지=AP 뉴시스
하버드대 학생들 “이스라엘 비판 간섭 말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대학 당국이 이스라엘 정부 비판과 학술 활동을 억제한다”며 항의하고 있다. 하버드대가 ‘학내 반(反)유대주의’를 더 강경하게 단속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불응하자 미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22일 박탈했다. 케임브리지=AP 뉴시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2일(현지 시간) 대표적인 아이비리그(미 동부의 8개 명문 사립대) 명문대인 하버드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는 초강수를 뒀다. 하버드대가 ‘반(反)유대주의 근절’ 등 정부의 교육 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했다는 게 이유다. 하버드대가 “국토안보부의 외국인 학생 차단은 불법”이라며 23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한국인 재학생과 예비 졸업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장관은 이날 X에 올린 글에서 “하버드대가 법을 준수하지 않음에 따라 2025∼2026학년도 ‘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미국 대학들은 국토안보부로부터 SEVP 인증을 받아야 외국인 학생들에게 입학허가서(I-20)를 발급할 수 있다. I-20은 유학생이 미국 입출국 시 반드시 소지해야 할 뿐 아니라 학생비자(F-1)를 받는 데도 필수인 서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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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당국이 발급하는 I-20이 상실돼 학생비자를 받지 못하면 미국에서 추방될 수 있다. 놈 장관은 이날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을 X에 공개하고 “하버드대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외국인 학생에게 높은 등록금을 납부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했다. 그는 “하버드대는 올바른 일을 할 기회들을 거부했다”며 “이번 사건이 전국의 모든 대학과 교육기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 국토안보부 “하버드, 반미 테러 선동가 방치”

미 국토안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하버드대는 더 이상 외국인 학생을 등록받을 수 없다”며 기존 외국인 학생들은 학교를 옮기지 않을 경우 법적 지위를 잃는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 본부는 테러를 지지하는 반미(反美) 선동가들이 유대인 학생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물리적으로 폭행하며 학습 환경을 방해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위험한 캠퍼스 환경을 조성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버드대의 범죄가 2022년 208건에서 2023년 323건으로 55%나 급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버드대가 위구르족 집단 학살에 연루된 중국 공산당 준군사조직원들을 초청해 교육하는 등 중국 공산당과의 공조를 촉진하고 동참했다”고도 했다. 앞서 국토안보부는 지난달 16일 하버드대에 외국인 재학생들의 범죄 행위와 폭력 행위 이력 등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SEVP 인증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

● 韓 재학생 300여 명 날벼락

하버드대에 따르면 현재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약 6800명으로, 전체 학생의 약 27%를 차지한다. 하버드대 국제부총장실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인 재학생은 317명으로 중국, 캐나다,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23일 하버드대는 외국인 학생 등록 금지 조치에 대한 소송을 보스턴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앞서 하버드대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보조금 삭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버드대는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140여 개국에서 온 외국인 학생과 학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대학과 국가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국제학생사무국은 “매일 유학생들의 체류 신분 현황을 확인하며 문제가 생긴 학생에게 즉시 알리고 법률 지원을 받도록 안내한다”고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학생 보호 대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버드대가 2024∼2025학년도 학사일정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29일 졸업식을 앞둔 가운데 한국인 예비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하버드대 학부에 재학 중인 A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학사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 친구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기존 학생비자(F-1) 효력이 없어져 미국으로 재입국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하버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B 씨도 “대학이 정부가 제시한 시한(4월 30일)까지 요구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갑자기 이런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며 “현재로선 학교를 믿는 수밖에 없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이날 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교육 협력을 정치화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며 “해외 중국 학생과 학자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확고히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 컬럼비아대 등으로 압박 확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학들에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교내 정책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하버드대에 취한 압박을 다른 주요 명문대로 확대할 것이란 방침도 분명히 했다. 놈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컬럼비아대 등 다른 대학에도 하버드대와 유사한 조치를 고려 중이냐는 질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미 보건복지부도 이날 “컬럼비아대가 유대인 학생들을 향한 괴롭힘에 고의적으로 무관심하게 행동했다”며 시민권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이 강한 컬럼비아대는 가자전쟁 발발 이후 친팔레스타인 대학 시위의 진원지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후 지난달까지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동결했거나 취소한 보조금은 최소 127억 달러(약 18조4150억 원)에 달한다. 하버드대는 보조금 중단 조치에 효력정지 소송으로 맞섰다. 컬럼비아대는 학내 시위에 대한 보안 정책을 변경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가 하버드대의 반발 직후 ‘거부’ 방침으로 선회했다.

미 언론들은 최근 고율 관세 정책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진보 엘리트를 향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하버드대를 비롯한 명문대가 극좌 사상과 전복적인 활동의 보루라는 게 트럼프 지지층의 광범위한 문제의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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