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성능 AI칩의 30%수준 저사양… 中의 희토류 통제 완화 위한 조치
中 기술자립 가속화 우려도 반영… 업계 “韓 반도체 기업에 긍정 영향”
中, 관세전쟁속 2분기 성장률 5.2%
중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사진)가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에 대한 판매를 승인했다”고 15일 밝혔다.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되던 올 4월 미국이 대중(對中) 압박 카드로 H20 수출 규제를 결정한 지 3개월 만에 판매 금지가 풀린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완화 여건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담은 조치란 분석이 제기된다. 또 대중 규제가 오히려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의 ‘기술 자립’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H20 판매를 승인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미중 무역 합의 감안해 H20 판매 승인한 듯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국제공급망촉진박람회(CISCE)의 엔비디아 부스에 로봇 전시품이 설치되고 있다.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미국 정부가 중국 수출을 금지했던 H20 인공지능(AI) 칩의 판매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신화 뉴시스황 CEO는 이날 베이징에서 런훙빈(任鴻斌)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 회장과 면담한 뒤 취재진에 “미국 정부가 H20 칩을 중국 고객에게 인도하도록 허가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황 CEO는 16일 개막하는 중국국제공급망촉진박람회 참석차 전날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날 엔비디아도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정부에 H20 판매 재개 허가를 신청했고, 곧 제품 공급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사양을 낮춰 만든 AI 칩이다. 성능은 최고 사양의 AI 칩으로 관련 기업들이 가장 많이 쓰는 H100의 20∼30% 수준이다. 올 초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H20을 이용해 미국의 챗GPT에 필적하는 AI 모델을 만들어 내자 수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됐다. 여기에 미중이 상대국에 각각 100%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통상 갈등이 격화되자 미국은 올 4월 엔비디아의 H20과 AMD의 MI308 등을 대중 수출 통제 목록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이번 판매 승인은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감안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시 중국은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를 완화하고,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기술 수출 제한을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달 초 미국 기업의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의 중국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또 중국은 미국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업인 시놉시스와 앤시스의 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칩과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권은 중국의 최우선 협상 과제였다”며 “H20의 중국 판매 승인 결정은 미국이 중국에 신뢰를 보여 주려는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 韓 기업 등 AI 반도체 공급망에 긍정적
황 CEO는 중국을 방문하기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H20 수출 규제 해제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CEO는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엔비디아의 기술을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어야 미국 기업이 AI 분야에서 중국보다 앞설 수 있다”고 말했다고 WSJ가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특히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로 중국 테크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술 자립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H20 중국 판매 재개는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규제로 올 2∼4월 55억 달러(약 7조5911억 원)의 손실을 입은 엔비디아에도 큰 호재가 될 전망이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AI 반도체 공급망과 AI 역량을 구축 중인 중국 테크기업에도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H20에는 삼성전자 등이 만드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탑재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H20에 들어가는 HBM3(4세대)의 주요 공급 업체”라며 “올 3분기(7∼9월)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H20 중국 판매는 재개했지만 14일 로이터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이달부터 드론과 드론 부품, 반도체 및 태양광 패널의 소재로 쓰이는 폴리실리콘의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향후 드론과 폴리실리콘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 부과가 이뤄질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 中, 관세 전쟁 속에서도 2분기 경제성장률 5.2%
한편 중국 정부는 올해 2분기 5.2%, 상반기 기준 5.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15일 밝혔다. 관세 전쟁 속에서도 1분기 경제성장률 5.4%에 이어 2분기에도 5%대를 유지한 것. 다만 이런 추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중국산 수출품의 우회 수출 경로인 동남아 국가들을 겨냥해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고, 중국 내부적으로도 경기 침체 등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H20’
최고급 인공지능(AI) 칩 ‘H100’ 대비 성능이 20∼30% 수준인 저사양 제품. 미국이 최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떨어지는 성능으로 개발했다. 딥시크 등 중국 AI 스타트업들이 널리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지며, 미국은 4월 H20도 대중 수출 통제 목록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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