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562조, ‘X’ 팔로어 2.2억명… ‘머스크 제3당’ 실험 성공할까[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9일 01시 40분


코멘트

美 정계의 ‘제3당’ 실험
‘아메리카당’ 창당 선언한 머스크… 내년 중간선거서 ‘캐스팅보트’ 노려
페로-네이더 등 제3당 모색했지만, 주요 선거서 당선까지 연결 안 돼
승자독식 대선-주별 선거 요건 등… 제3당 후보 한계 뚜렷하게 보여줘
양극화로 제3지대 원하는 유권자↑… 적 많은 머스크, 우군 확보가 관건

“미국에서 제3 정당은 성공한 적이 없다. (정치) 체계가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간선거에서) 상원 2∼3석, 하원 8∼10석만 확보하면 된다. 의회를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했고, ‘1호 친구(First Buddy)’로도 불렸지만 최근 대통령의 감세 정책 등을 두고 갈등을 겪다 결별한 머스크 CEO(54)가 ‘아메리카당(America Party)’을 창당한 뒤 내년 11월 중간선거에 도전하겠다고 5일(현지 시간) 선언했다.

자산 4070억 달러(약 561조6600억 원), 본인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X’의 팔로어만 2억2262만 명인 세계 최고 부호 머스크의 ‘정치 도전 및 실험’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다만, 평가와 전망은 엇갈린다. 일단은 1776년 미국 건국 뒤 단 한 번도 제3당이 주요 선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50개 주(州)별로 천차만별인 정당 및 후보자 등록 요건 같은 제도적 제약 등으로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반면 양당 체제에 대한 미국인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고 머스크가 이제껏 양당제를 타파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부(富)와 소셜미디어 영향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아메리카당’이 기존의 제3정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반론도 제기된다. 미국 정계의 제3지대 모색 사례, 머스크의 신당을 바라보는 미국 유권자들의 시선을 소개한다.

● ‘트럼프 선배’ 격 페로

머스크 이전에도 미국 정치를 바꿔 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1992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정보기술(IT) 사업가 로스 페로(1930∼2019)가 있다. 그는 IBM에서 컴퓨터 판매를 담당했던 영업사원 출신이다. 32세 때 설립한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스(EDS)를 통해 억만장자가 됐다.

페로는 1992년 2월 CNN의 유명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 “11월 대선에 무소속으로 나서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그는 공화당 후보인 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 민주당 후보였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맞서 반(反)세계화, 보호무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반대, 소모적인 군비 경쟁 지양 등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대선에서 18.9%(약 1974만 표)를 득표했다. 클린턴 후보(43%·약 4491만 표)와 부시 후보(38%·약 3910만 표)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50개 주 중 어떤 주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는 못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은 단 한 명도 가져가지 못했다. 간선제와 직선제가 혼합된 미국 대선에서는 해당 주에서 1위를 한 후보가 해당 주에 걸려 있는 선거인단을 독식하므로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페로는 1996년 대선 때는 개혁당을 창당해 재도전에 나섰다. 다만 4년 전보다 훨씬 저조한 8.4% 득표에 그쳤다.

페로의 실험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제3당 후보의 가능성을 보여줬단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가 외친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폭스뉴스 등은 페로가 2019년 7월 사망 직전 재선을 준비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폭스뉴스는 페로의 도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또 두 사람의 공통점을 집중 조명했다. 두 사람 모두 기득권에 대항하는 억만장자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로 각종 무역협정과 미국 내 일자리가 해외로 넘어가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자신의 정책을 주창하기 위해 케이블뉴스를 적극 활용한 것 역시 비슷하다.

● 네이더, 블룸버그, 슐츠, 양 등도 도전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법조인이며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같은 소비자보호운동으로 유명한 랠프 네이더 전 녹색당 대선 후보(91)도 미 정치권에서 제3당 이야기가 나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96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의 대선에서 군소 정당 녹색당,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2000년을 제외한 나머지 세 차례 대선에서는 모두 1% 미만의 저조한 득표율을 얻었지만 2000년 대선에서는 2.74%를 얻으며 나름 존재감을 나타냈다.

2000년 당시 미국 시민사회 진영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보다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 자격으로 NAFTA 등을 옹호하자 강한 불만을 표했다. 네이더 또한 이런 기류를 등에 업고 출마했다.

잘 알려진 대로 당시 고어 전 부통령은 일반 유권자 득표에서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0.5%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당시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려 있던 최대 격전지 플로리다주에서 연방대법원까지 가는 검표 소송 끝에 패했고 결과적으로 백악관 주인이 되지 못했다.

이에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네이더가 민주당 표를 잠식해 결과적으로 부시 당선만 도와줬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는 현재 수차례 추락 사고를 일으킨 보잉 737-MAX 기종을 퇴출하자는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포브스 기준 1047억 달러(약 144조4860억 원)를 지닌 세계 18위 부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83)도 있다. 비상장 경제정보 매체 블룸버그의 설립자인 그는 2001년 9·11테러 직후인 2002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3선 뉴욕 시장을 지냈다.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직책’이라는 최대 도시 뉴욕의 시장을 지내며 테러 후폭풍을 성공적으로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여러 당적을 오갔다. 시장 재직 전 민주당원이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시장 임기 때는 공화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3번째 임기 때는 무소속이었을 만큼 특정 정당에 뿌리를 두지 않은 채 제3당을 모색했다.

그는 시장 퇴임 후 민주당으로 복귀해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기부금을 받지 않고 사비로 대선 캠페인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후보 경선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두지 못하자 중도 사퇴했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72) 역시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무소속 대선 출마 및 신당 창당 등을 모색했다가 포기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미국의 분열 심화, 국제사회에서 미국 내 위상 약화를 우려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집권 당시 수차례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차원에서 제3당 창당을 모색했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출마 전 뜻을 접었다는 것이다.

IT 기업가 출신의 대만계 정치인 앤드루 양(50)은 제3당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는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2021년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경선에 모두 참여했지만 낙선했다. 현재의 민주당이 양극화에 지친 젊은 층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경제 성장 또한 이뤄내지 못한다며 2022년 ‘전진당(Forward Party)’이란 신생 정당을 창당했다. 머스크의 신당 창당 의사 발표 후에는 “머스크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의 신당이 녹색당, 전진당처럼 이미 투표용지 등재권을 가진 기존 정당과 제휴할 경우 중간선거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 제3당 필요성은 커져

양극화 심화 등으로 미국 유권자 중 ‘제3정당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여론조사회사 유고브가 이달 2∼7일 미국 성인 11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제3당이 필요하다’는 답은 45%로 ‘필요하지 않다’(27%)보다 훨씬 많았다. 지난해 9월 갤럽 조사에서도 ‘제3당이 필요하다’는 유권자가 58%로 ‘필요하지 않다’(37%)를 앞섰다.

지지 정당별로는 무당층 유권자와 민주당 지지층이 공화당 지지층보다 제3당을 선호하는 편이다. 현재의 민주당이 전통적인 지지층인 소수 인종, 노동계, 사회적 약자 등을 더 이상 제대로 대변해 주지 못한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고브 조사에서 무당층의 58%, 민주당 지지층의 46%가 ‘제3정당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층은 32%에 그쳤다. 갤럽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드러났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느 한쪽도 상하원을 완벽하게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머스크에게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공화당은 상원 전체 100석 중 53석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45석)과 친(親)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2석)이 47석이다. 하원 435석 중 공화당은 220석, 민주당은 212석, 공석은 3석이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3분의 1, 하원은 전원 교체된다. 머스크가 ‘상원 2∼3석, 하원 8∼10석’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거론한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일부 격전지에 대대적인 화력을 쏟아부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를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의 ‘브로맨스’가 깨진 결정적 배경에는 감세와 반이민이 골자인 이른바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있다. 이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될 당시 공화당 의원 중 3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J D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가까스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결국 머스크의 속내는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이긴 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정책에 반대하는 당내 반대파도 있는 만큼 이런 지역을 적극 공략해 각종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미 전역의 광범위한 유권자들을 설득하기보다 특정 지역의 핵심 지지층을 공략해 최소한의 의석으로 워싱턴 정계의 판을 뒤흔들겠다는 의도인 것.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한때 민주당에 선거 전략 등을 자문했던 맥 매코클 듀크대 교수는 머스크의 신당이 2000년 대선에서 네이더 후보가 민주당 지지층을 일부 잠식한 수준의 파괴력은 지닐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같은 경합지에서 공화당 후보의 출마를 방해하거나 당선을 저지시킬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내년 중간선거에 출마할 공화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 그 경쟁자를 지원하는 식으로 잡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머스크에 대한 반감-기성정치의 벽은 걸림돌

다만 제3정당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 중에서도 ‘머스크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답은 많지 않았다. 유고브 조사에서 ‘머스크의 신당 지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62%에 달해 ‘고려한다’(11%)보다 5배 이상 많았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머스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자기 자신”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많은 이들을 적으로 만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며 민주당과도 척을 졌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양당 모두에서 외면받는 머스크가 세력을 넓히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3당이 기성 정치의 견고한 벽을 넘어서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유권자들은 양당 체제에 익숙해져 있다. 설사 제3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있다 해도 이들 또한 투표 당일에는 사표(死票)를 우려해 결국 공화당이나 민주당 후보를 찍는 경향이 있다. 페로가 1992년 대선에서 약 2000만 표를 얻고도 단 한 명의 선거인단을 가져가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50개 주마다 요구하는 선거 요건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자금력과 조직력이 부족한 제3당에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약 3950만 명)에선 신규 정당으로 등록하려면 주내 전체 유권자의 0.33%를 당원으로 가입시키거나 110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NYT는 제3당의 성공 가능성이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일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비관했다.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통해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것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삼아 왔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막대한 미국 연방정부 적자 감축을 외치는 머스크가 ‘전국 선거’인 대선과 달리 ‘지역 선거’인 내년 중간선거에서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지닐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가 부채를 줄이자는 취지는 좋지만 이를 위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줄이자는 데 동의할 정치인이나 유권자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OBBBA의 상원 통과 당시 반대표를 던져 트럼프 대통령의 미움을 산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 또한 이 법안 자체가 아닌 자신의 지역구인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의료 예산이 줄어든다는 것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제3당#일론 머스크#아메리카당#도널드 트럼프#테슬라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