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트럼프처럼”… 정치 양극화 심는 유럽·日우파 정당들 [트럼피디아] 〈34〉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7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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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스코틀랜드 순방길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20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참정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교본 삼아 지지층을 결집했다. 이번 선거 구호를 ‘일본인 퍼스트’로 정하고 반외국인 정서를 부추겨 강경 보수 지지층을 끌어모았다. 급격한 고령화로 최근 일본에 늘어난 외국인 때문에 일본인의 살림살이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민자가 미국을 침공하고 있다’며 강경 반(反)이민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흡사한 방식으로 유권자를 동원한 것이다.

그간 참정당은 다양한 주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유사한 주장을 이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엔 유튜브 방송을 통해 반백신 운동을 펼쳤고, 최근에는 제약회사와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장관이 주도한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운동과 매우 비슷하다. 또 가미야 소헤이(神谷宗幣·48) 참정당 대표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기득권 세력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사회 각 분야에 있다”며 딥스테이트에 의한 각종 음모론을 주장한다.

이처럼 세계 곳곳의 민족주의 보수 정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마가 운동을 롤모델로 삼아 세력 규합에 나서고 있다. 참정당의 경우 아직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과 직접적인 접점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유럽은 사정이 다르다. 마가 진영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유럽의 유사 정당들과 밀접하게 교류했다. 최근 이들이 득세하자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미국식 정치 양극화를 이식하겠다”
“미국처럼 중도 보수와 극좌가 대립하는 정치 구도를 만들겠다.”

독일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의 내부 정치 전략 문건에 “워크(woke·깨어있음, 진보 진영을 비꼬는 말)에 대항하는 ‘중도 보수’ 세력으로 이미지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미국 수준의 정치 양극화를 조장해 반사이익을 얻자’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고 폴리티코가 8일 보도했다. AfD는 최근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 2월 총선에서 연방의회 630석 중 152석을 차지하며 2013년 창당 후 불과 12년 만에 제2당으로 올라섰다.

AfD는 2015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대규모 이민자 유입을 허용하자 이들을 독일 밖으로 재이주시켜야 한다는 강경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며 세를 불렸다. 스스로를 반체제 세력으로 묘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반대하는 것 또한 마가 진영과 유사하다.

올 1월 머스크와 원격 대담을 진행 중인 바이델 공동대표. 베를린=AP 뉴시스
마가 진영은 올 2월 총선을 앞두고 AfD를 도왔다. 특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AfD의 앨리스 바이델 공동대표(46)와 공동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적극 지원했다. 머스크는 “독일인이 AfD를 지지하지 않으면 독일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며 바이델 대표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머스크를 두고 선거 개입 논란도 일었다.

AfD는 현재 제2당이지만 연정을 꾸려 집권 세력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극우 정당과 협력을 거부하는 이른바 ‘극우 방화벽’ 문화가 독일 정치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 5월에는 연방헌법수호청(BfV)이 AfD가 무슬림 국가에서 이주한 독일 시민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위헌적 우익 극단주의 단체’로 분류해 연대 세력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올 2월 AfD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본 바이델 대표가 독일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베를린=AP 뉴시스
이에 코너에 몰린 AfD가 ‘미국식 정치 양극화’를 조성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fD를 ‘극좌 대항마’로 부각하는 구상이다. 이념적 위기감을 조성해 독일 젊은층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는 극좌 성향 좌파당을 타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중도 보수 유권자들이 집권 기독민주연합(CDU)보다 AfD를 더 나은 선택지로 여기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극좌 광인에 대항하는 상식적이고 건전한 정치 세력’이라는 프레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적극 활용한 전략이기도 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망친 미국에 상식(common sense)를 되돌리겠다”고 강조했다.

폴리티코는 AfD의 전략 문건을 작성한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흐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들과 교류하는 점에도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행동, 마가의 성공 배경을 면밀하게 분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슈토르흐 의원은 올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는데 마가 진영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와 만나기도 했다.

● 백악관 찾아가 트럼프 만난 대선 후보
배넌은 트럼프 1기 행정부당시 내분 끝에 백악관에서 밀려난 뒤 유럽을 돌며 마가 운동을 알렸다. 2018년에는 ‘무브먼트’라는 이름의 재단을 설립해 유럽 우파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엔 이탈리아 로마 외곽에 있는 수도원을 개조해 차기 지도자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를 설립하겠다고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배넌이 구상한 사업은 모두 실현되지 못했으나, 고물가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지자 반이민 정서가 유럽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에 유럽 우파도 다시 득세하기 시작했다. 올 2월에는 독일에서 AfD가 원내 제2당으로 떠올랐고, 5월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주장했던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이 지방선거에서 크게 승리했다. 반면 루마니아와 알바니아에서는 마가 진영이 노골적으로 지원한 후보가 선거에서 지며 마가 진영에 패배를 안겼다.

올 5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난 나브로츠키 당시 폴란드 대선 후보(왼쪽)와 트럼프 대통령. 사진 출처 백악관 X
이에 올 5월 폴란드에서 열린 대선은 민족주의 우파 성향의 보수 역사학자 카롤 나브로츠키(42)는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을 선거 운동에 적극 활용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폴란드의 안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협력해야 한다며 자신이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1차 투표를 약 2주 앞두고는 백악관을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폴란드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는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5월 18일 치른 1차 투표 때 나브로츠키는 29.5%를 득표해 1위를 기록한 중도 성향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에 1.8%포인트 차로 뒤졌다. 결선투표까지 남은 시간은 2주. 폴란드에서는 전례 없는 행사가 열렸다.

5월 27일 폴란드의 남동부 소도시 야시온카에서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개최됐다. CPAC은 미국 보수 진영의 최대 행사로, 최근에는 마가 진영의 축제처럼 운영되고 있다. 결선투표를 닷새 앞둔 민감한 시기에 CPAC이 열리자 “마가의 노골적인 나브로츠키 밀어주기”라는 지적이 많았던 이유다.

올 5월 폴란드 야시온카에서 열린 ‘CPAC 폴란드’ 행사에서 연설하는 놈 장관. 야시온카=AP 뉴시스
CPAC에서 단연코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장관이었다. 이날 연설에서“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밝힌 놈 장관은 나브로츠키에 투표할 것을 공개적으로 권했다.

“카롤이 다음번 폴란드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어요?”

놈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협력할 지도자를 선출한다면 미국이 폴란드를 지키겠다”고 했다. 미군이 계속해서 폴란드에 주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샤스코프스키 후보에 대해선 “엉망진창인 지도자”라고 비판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놈 장관의 연설을 두고 “미국의 보호를 받고 싶다면 국적을 막론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는 선언”이라고 평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 미국의 안보 약속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폴란드는 안보 위협을 크게 느껴 국방비를 두배로 늘렸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는 4.7%로 나토 회원국 중 이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폴란드 내부에서는 혹여 트럼프 대통령이 폴란드에서 발을 뺄까 불안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놈 장관이 “나브로츠키가 당선된다면 미국이 폴란드를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자 폴란드 여론은 술렁였다. 결국 결선투표에서는 나브로츠키가 초박빙 승부 끝에 1.9%포인트 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올 5월 유세장에서 나브로츠키 대통령. 그단스크=AP 뉴시스
정치 신인인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민족주의 우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는 EU 체제 하에서 폴란드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축소, 유럽 난민협정 탈퇴 등을 예고했다. 또 기독교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며 낙태, 동성 결혼 등에 반대한다. 강경 반이민 정책을 펴고, 역시낙태권과 트랜스젠더(성전환) 권리 등을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와 정치적 입장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나브로츠키 대통령 체제 하에서 유럽에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벌써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폴란드 선례를 따르라”며 거세게 압박해 결국 ‘GDP 대비 5%’ 국방비 지출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또 신규 회원국 가입시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나토와 EU 특성상 우크라이나의 가입 가능성도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34화 요약: 일본 참정당과 독일 AfD는 트럼프 대통령과 마가 운동을 롤모델 삼아, 반이민 정서를 활용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트럼프 진영도 유럽 민족주의 정당들을 지원하며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 대선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내 주요 의사 결정에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
https://original.donga.com/2025/trump_policy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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