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등 서방 주요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안보 보장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사진 출처: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 ‘X’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에 미온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아주 심각한 후과(後果·very sever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라고 13일 경고했다. 15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 기지에서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러시아가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강력한 경제제재 등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강경 발언은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이번 회담에 참여하지 않는 데다 자신이 푸틴 대통령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그는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 주요국 정상과 화상회의를 가진 후 이런 경고를 내놓으며 대(對)러시아 압박 수위를 높였다.
다만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전술에 말려들 가능성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또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이스라엘이 사실상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처럼 관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 트럼프 “러 휴전 안 하면 심각한 후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취재진에게 ‘후과’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질문을 받자 “(아직) 말할 필요가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대신 그는 “(15일) 첫 번째 회담에서 필요한 답을 (러시아로부터) 얻지 못해 두 번째 회담을 여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두 번째 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방 제재에도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해 온 인도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점을 예로 들며 그가 러시아 은행 등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중국 등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는 국가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등을 단행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 같은 강경 발언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토를 유린당한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배제됐다는 국내외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 주요국 정상과 가진 화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안보 보장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 등이 전했다. 그간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보장한다면 러시아가 점령 중인 영토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는 등 안보 보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4일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핵무기 통제에 관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휴전 이외의 의제도 적극 논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알래스카 2025년, 1938년 뮌헨이나 1945년 얄타 돼선 안 돼”
가디언 등은 두 정상의 2018년 7월 핀란드 헬싱키 회담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친러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우려했다. 당시 미 정계는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집권을 돕기 위해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시끄러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개입했을 이유가 없다”며 러시아를 두둔했다. 푸틴 대통령이 2014년 강제합병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때도 반박하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러시아 전문가가 크게 부족해졌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불가리아 대사를 지낸 에릭 루빈 전 대사는 FT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해 대통령에게 조언할 정책 입안자가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작가 등 40여 명은 13일 프랑스 르몽드에 공동 기고문을 보내 이번 회담이 “1938년 ‘뮌헨 협정’, 1945년 ‘얄타 회담’이 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등은 뮌헨 협정을 통해 독일계가 많은 체코슬로바키아 내 주데텐란트를 나치 독일에게 넘겼다. 얄타 회담에서도 미국, 영국, 옛 소련 등이 한반도 및 독일의 분할 점령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