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세계를 상대로 펼치고 있는 ‘관세 전쟁’이 ‘스니크플레이션(sneakflation)’을 초래하고 있다고 미 CNN방송이 24일 진단했다. 스니크플레이션은 ‘살금살금, 몰래’ 등을 뜻하는 영어 ‘스니크(sneak)’와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조어로 소비자 물가가 잘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상승될 때 쓰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담은 외국 정부와 기업에게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수입 물가 상승 여파로 결국 그 부담은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게 전가되는 모양새다. 특히 이익 둔화에 직면한 미국 기업이 이에 대처하기 위해 소비자 눈치를 보며 가격을 조금씩 올리면서 스니크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 신학기 앞두고 ‘악’소리 나는 물가
CNN은 “미국 소비자와 기업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증거가 많아지고 있다”며 “체감 물가 뿐아니라 경제 데이터, 학술 연구 등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 예는 학용품. 정부가 대부분의 학교 비품 구매를 지원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연필, 계산기, 휴지 등 대부분의 용품을 학생이 직접 구입한다. 매년 9월 신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학교가 요구하는 학용품 구입에만 수십 만원의 안팎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올해 그 부담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CNN에 “신학기 운동화를 사주려다 모든 상품의 가격이 작년보다 최소 10달러(약 1만3800원)에서 20달러(약 2만7600원) 가량 올랐음을 발견했다”며 “사람들이 물건이 얼마나 비싼지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용 부담에 마진이 줄고 있는 온라인 상점도 소비자에게 까다롭게 굴고 있다. AP통신은 “과거 아마존은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은 고객에게도 25달러(약 3만4500원) 이상만 구매하면 무료 배송을 해줬지만 이젠 35달러(약 4만8300원)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또한 “상품 가격 상승과 치솟는 배송비 때문에 온라인 서비스가 지속 불가능해지고 있다. 무료 배송의 시대가 곧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가 상승은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소비자물가 상승의 선행 지수로 꼽히는 미국의 7월 생산자물가(PPI)는 한 달 전보다 0.9% 올랐다. 특히 농산물은 6월보다 12.8% 급등했고 신선 채소 등은 38.9% 치솟았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많은 농산물에 관세가 붙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 소비자에 ‘관세 떠넘기기’ 심화
최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올 6월까지 미국 소비자들은 관세의 22%를 부담했다. 그러나 10월에는 67%까지 부담할 것으로 예상됐다. 골드만삭스는 “관세의 직접 비용 중 약 70%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10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연구에서도 수입품 가격이 관세 부과 이전보다 평균 약 5% 비싸졌다. 미국 내 생산품의 경우에도 3% 가량 인상됐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기업들은 관세가 얼마나 오래, 폭넓게 지속될지 모르기에 점진적으로 가격을 인상한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관세 정책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근 800달러(약 110만4000원) 이하 제품이 담긴 소포에 대한 관세 면제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인이 애용하던 저렴한 중국산 물품이 미국에 들어오기 어려워졌고, 들어오더라도 관세 비용 납부가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근 407개 품목의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도 “즉시 관세 부과”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버터나이프, 소화기 등의 물품도 50% 관세를 물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에도 “미국으로 들어오는 가구 수입을 조사할 것”이라며 “향후 50일 이내에 해당 조사를 완료하고 수입 가구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에 따른 물가 상승 부담이 미국 소비자를 계속 짓누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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