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의 원조는 12년 동고동락한 멘토였다 [트럼피디아] <39>

  • 동아일보

코멘트
2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말이 다 맞다”고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1973년 미 법무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프레드를 기소했다. 혐의는 인종차별이었다. 법무부는 아파트 임대 사업을 하던 부자가 흑인에게 일부러 세를 주지 않았다고 봤다.

곤란에 처한 이들은 당시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와 의기투합했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고, 유명인들과 자신의 요트에서 어울리는, 무엇보다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고 다니는 변호사 로이 콘이었다.

콘과의 만남이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유의 호전성과 거침없는 태도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수’했다는 것. 뉴욕 지역매체 빌리지보이스의 배테랑 기자 웨인 바렛은 1992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저서에서 “콘은 트럼프 대통령의 삶에서 단순 변호사 이상의 존재였다. ‘멘토’이자 사업과 사생활의 중대사를 상시 조언하는 인물이었다”고 적었다. 둘이 함께한 12년의 세월을 살펴봤다.

● 매카시즘 광풍 앞장선 영재 변호사
“뉴욕의 많은 이들에게 ‘악(惡)’의 상징인 그를 기념하러, 빅애플의 악명 높은 인물들이 모였다.”

바렛은 1979년 3월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클럽 ‘스튜디오 54’의 문 앞에서 파티에 참석한 인사들을 붙잡고 이름을 물었다. 이곳에서는 콘의 52세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주최자는 콘 본인이었다. 200명을 초대했고, 뉴욕 정재계와 언론계, 예술계의 거물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냈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앤디 워홀이 있었고 맨해튼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도전 중인 32세의 젊은 트럼프 대통령도 있었다.

콘은 실력 좋은 변호사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을 뒤흔든 ‘매카시즘’을 추동한 핵심 인물이었다. 콘은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인물의 조사를 주도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수석자문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다.

유력 판사의 아들로 20세에 뉴욕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해 21세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직후 검사가 돼 소련 간첩을 색출하는 반공 사건에 주로 투입됐다. 원자폭탄 정보를 소련에게 넘겼다는 간첩 혐의를 받는 유대계 미국인 로젠버그 부부 사건을 1951년 맡으며 유명해졌다. 부부에 대한 사형은 1953년 집행됐고 매카시는 이 사건 이후 콘을 영입했다.

콘은 트럼프 대통령 이전에 존재한 음모론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부터 4년간 사그라들지 않던 매카시즘 광풍은 1954년 열린 36일간의 TV 청문회로 끝이 났다. 빈약한 근거로 기소가 이뤄졌다는 점이 세상에 드러난 것. 매카시 의원은 같은 해 12월 상원에서 불신임을 당했고 3년 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54년 당시 27세였던 콘은 고향 뉴욕으로 돌아가 변호사로 개업해 부활에 성공했다. 50, 60년대를 거치며 뉴욕 정재계의 마당발로 자리잡았다. 바렛은 빌리지보이스 기사에서 콘에 대해 “마녀사냥꾼에서 마피아 브로커로 변신한 뉴욕의 가장 눈부신 법률 스타이자 정치 전략가, 고향 브롱크스의 그림자 보스”라고 묘사했다. 콘은 부정직한 변호 행위로 수차례 징계를 받고 세 차례 기소됐지만 유죄 판결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 “인정하지 말고 거칠게 반격하라”
1973년 트럼프 대통령은 맨해튼의 회원제 사교클럽에서 콘과 처음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콘보다 19세 어렸다. 당시 27세였던 그는 브루클린 최대의 아파트 건축업자였던 아버지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새내기 사업가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 따르면 그는 콘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갔다. 그리고는 법무부의 기소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콘은 “지옥으로 가라고 해라. 법정에서 맞서 싸우라”고 했다.

트럼프 부자는 콘에게 사건을 맡겼다. 그해 12월 콘은 트럼프 부자를 대리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1억 달러의 맞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떠들썩하게 진행됐다. 콘은 법무부와 미 연방수사국(FBI)를 상대로 여론전을 폈다. 유대인인 콘은 수사당국이 거친 수사를 벌였다고 주장하며 이들이 “게슈타포식 전술을 썼다”고 몰아갔다.

소송은 1975년 6월 합의로 끝났다. 트럼프 부자는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은 흑인과 소수자에게 주택을 임대하고, 언론에 ‘기회균등 주택을 제공한다’는 광고를 내기로 했다.

콘의 사촌 데이비드 마커스는 PBS 인터뷰에서 “트럼프 부자가 세입자를 가려서 받았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콘은 사실을 부인하고, 거칠게 반격하면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트럼프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콘과 트럼프 부자는 합의를 두고 ‘승리’라고 선언했다. 마커스는 “콘은 법원 판결보다 중요한 것이 민심 재판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 트럼프, 맨해튼 진출에 성공하다
세입자 인종차별 사건 5년 뒤인 1980년 맨해튼 심장부의 낡은 코모도르 호텔이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재개장해 문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맨해튼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데뷔한 순간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 프레드와 수십년간 교류한 에이브러햄 빔 당시 뉴욕 시장이 그랜드 하얏트 호텔 개발 사업의 편의를 봐줬다고 봤다. 40년간 연간 4억 달러의 감세 혜택을 준 한 것이 대표적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본 감세 혜택의 규모가 실제로는 더 컸고, 2016년 기준 36년간 총 3억4930만 달러의 감세 혜택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콘 역시 정계와 마피아 인맥을 활용해 1980년 그랜드 하얏트 호텔과 1983년 트럼프 타워 개장 등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사업을 물심양면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에 대한 야망도 부채질했다. 1982년에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소개했다. 둘은 이후 11년간 서신을 주고받는 펜팔 사이가 됐다.

1984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형적인 졸부’와 ‘탁월함의 표상’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38세의 당돌한 개발업자”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러시아와 핵협상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협상을 아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협상 능력을 타고난다. 미사일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우는 데 한시간 반이면 된다. 이 일을 정말로 내가 하길 바라는 사람이 누군인지 아는가? 로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하겠다.”

● 콘의 말년에 차갑게 돌아선 트럼프
그해 콘은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 주변에는 비밀로 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자체를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최측근만 알았다고 한다. 또 그는 사기와 허위 진술 등의 혐의로 변호사 자격 박탈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명 심리에 증인으로 출석해 “콘은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NYT가 전했다.

건강이 악화되던 콘은 주변에 “간암 판정을 받았다”고 둘러댔다. 트럼프 대통령이 갓 구입한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도 1985년 방문했다.

그러나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등을 돌렸다. 콘의 비서 수전 벨은 “도널드는 콘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자 하루아침에 갑자기 멀어졌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콘에게 맡겼던 사건을 다른 변호사에게 옮겼다.

콘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1986년 6월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8월에는 세상을 떠났다. 당시 콘은 59세, 트럼프 대통령은 40세였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콘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하나의 시대가 끝났구나”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콘의 사망 이듬해 본격적으로 정치에 목소리내기 시작했다. 그해 9월 유력 일간지 3개에 “동맹에게 보호의 대가를 받고 관세도 거두자”며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전면 광고를 실었다. 12월에는 ‘거래의 기술’을 출간했다. 콘 없는 ‘새 시대’의 문을 연 순간이었다.

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
https://original.donga.com/2025/trump_policymap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