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의 수학 공식… 비난-경멸-방어-담쌓기 대화
몇 년 내 이혼 가능성 크게 높여… 무관심-딴청도 갈라서기 ‘예측’
싸울 때 ‘긍정 대 부정’ 언행 비율
5 대 1보다 낮으면 갈등 깊어져… 평상시라면 20 대 1까지 지켜야
친밀감을 표현하는 ‘연결 시도’에 긍정적 화답 빈도 높을수록 행복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그만 좀 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네 성격이 문제지.”
이혼 직전에 놓인 부부 갈등을 다루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하는 부부마다 배우자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뱉어 내기 바쁘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비난하고 경멸하거나 대화를 회피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감정이 상하고 더 독한 말을 쏟아 내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다수 이혼 사유가 ‘성격 차이’라고 하지만 사실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는 없다. 행복한 부부나 불행한 부부 모두 서로 성격이 다르고 그에 따른 갈등을 겪는다. 다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의 결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부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가트맨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갈등 유무나 그 내용 자체보다는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잘 싸우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부 갈등 주제 가운데 해결 가능한 문제는 약 31%에 불과하고, 나머지 69%는 기질이나 자란 환경 등이 달라 계속 반복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갈등 ‘해결’이 아닌 ‘관리’를 잘 하려면 몇 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가트맨 교수가 일명 ‘사랑 연구소(Love Lab)’에서 약 50년 간 백인, 흑인, 동양인, 다문화 부부 3000여 쌍을 연구해 밝혀낸 ‘행복한 부부의 갈등 관리법’을 살펴보자.
● 대화 패턴이 이혼 가능성을 알려 준다
가트맨 교수는 1983년 부부 79쌍의 대화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부부가 15분씩 그날 겪은 일상적인 주제의 대화, 평소 갈등을 겪는 문제에 관한 대화, 즐거운 주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4년 뒤 이들을 다시 연구소에 초대해 같은 방식으로 한 차례 더 대화하는 것을 녹화했다. 특수 분석 장비를 통해 각각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내용, 표정, 태도 등을 부정적 반응과 긍정적 반응으로 세밀하게 나눴다. 이와 함께 대화할 때의 심장 박동, 피부 전도도(EDA) 변화를 비롯해 감정에 따른 생리학적 변화도 기록했다.
그로부터 14년 뒤 이 부부들의 근황을 추적해 보니 79쌍 가운데 21쌍이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시기에 따라 결혼 7년 내 이혼한 부부를 조기 이혼 부부로, 결혼 7∼14년에 이혼한 부부를 후기 이혼 부부로 나눴다. 이들의 대화를 분석해 보니 이혼한 시점에 따라 헤어지는 부부의 특징을 추릴 수 있는 단서들이 있었다.
조기 이혼 부부는 갈등을 겪는 문제 대화에서 가트맨 교수가 ‘관계를 망치는 4가지 독(毒)’이라 명명한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소통 단절)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비난은 사소한 불평을 말할 때 상대 성격이나 인격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청소도 안 하고 당신은 항상 무책임해”). 경멸은 상대를 열등하다고 여기며 빈정거릴 때 나타난다(“돈이나 잘 벌어 오면 말을 안 하지”). 가트맨 교수는 이같이 조롱하고 깔보는 태도 때문에 경멸이 이혼을 가장 강력하게 예측하는 요소라고 봤다. 방어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잘못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야?”). 마지막으로 담쌓기는 대화를 회피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가리킨다.
훗날 대상을 바꿔 같은 연구를 반복하니 이런 네 가지 독을 포함한 대화 패턴을 드러낸 부부는 결혼 후 평균 5년 뒤에 갈라설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체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서로 공격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심각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신혼부부 124쌍을 6년 동안 추적 조사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갈등 상황에서 네 가지 독 대화 패턴이 3분 안에 나타나는 부부는 평균 6년 이내에 이혼할 가능성이 컸다. 주로 아내가 먼저 남편을 비난하고, 남편이 이에 방어적으로 나오면서 갈등이 격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격렬하게 싸운 부부만 이혼에 이른 것도 아니다. 후기 이혼 부부들은 일상이나 갈등 대화를 나눌 때 서로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특히 적었다. 아내가 어린 아들이 심부름을 잘 해낸 이야기를 신나서 꺼냈지만, 남편은 무관심하거나 화제를 바꾸는 식이다. 감정싸움이 잦은 조기 이혼 부부들과 비교해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커지며 정서적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게 문제다. 오랜 시간 결혼 생활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커지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대화가 많이 오갈 때뿐 아니라 긍정적인 대화가 적을 때도 이혼 위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마법 비율 ‘5 대 1’에 달렸다
싸우더라도 이혼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부부들의 대화에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마법의 비율이 숨어 있다. 긍정적 상호작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싸울 땐 먼저 손 내밀기 쉽지 않다. 이럴 땐 ‘5 대 1’을 기억하자.
원래 수학을 전공한 가트맨 교수는 부부의 갈등 상황 대화를 분석한 결과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 상호작용의 황금비율이 5 대 1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언쟁이 오갈 때 배우자에게 부정적 반응(화, 짜증, 반발, 무시 등)을 한 번 보였다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반응(수긍, 감사, 배려 등)이 다섯 번은 있어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비율이 지켜져야 갈등이 격화되지 않고 화해 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미소, 칭찬, 공감, 유머를 비롯해 배우자 어깨를 감싸거나 등을 쓰다듬는 등 화해의 모든 제스처가 긍정적 반응에 해당한다. 비록 지금은 다투고 있더라도 상대가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있고, 내 감정을 배우자가 이해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줄 수 있어서다. 다만 유머를 가장해 빈정거리거나 조롱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비율이 5 대 1에서 1 대 1.25 수준까지 내려간 커플은 멀지 않아 이혼할 확률이 커졌다. 다만 이 비율은 갈등 상황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일상 대화 중엔 20 대 1까지 비율이 올라간다. 싸울 때 다섯 번 화해를 시도하는 게 평상시 스무 번만큼이나 어렵다는 의미기도 하다.
오랫동안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에겐 5 대 1 황금비율도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아시아 최초로 국제 공인 ‘가트맨 부부치료사’ 자격을 취득한 최성애 HD행복연구소 소장은 “갈등이 오래된 부부는 ‘부정적 감정의 밀물 상태’에 빠져 있어 작은 일에도 과거부터 쌓인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정적 감정이 자꾸 비집고 나올 땐 자구 노력보다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게 안전하다. 최 소장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치료 과정인 ‘사랑의 지도 그리기(배우자의 내면 세계 파악하기)’와 ‘장점 50개 찾기’ 같은 작업을 시작으로 생각보다 단기간에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 일상의 사소한 ‘연결 시도’가 행복 좌우
갈등을 겪을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서로 정서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는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가트맨 교수는 이를 ‘연결 시도(bids for connection)’라고 했다. ‘정서적 접근 시도’ 또는 ‘친밀감의 시도’라고도 하는데, 먼저 말 걸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보다 평상시 사소한 말 걸기가 부부 관계에서 훨씬 중요하다.
신혼부부 130쌍의 일상 대화를 녹화해 분석한 결과, 둘 중 하나가 언어, 표정, 몸짓 등으로 상대방과의 연결 시도를 할 때 배우자가 이에 얼마나 응답하는지에 따라 부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저기 꽃 좀 봐”라는 말에 가리키는 곳을 보며 호응하는 부부와 무관심한 부부의 최후는 달랐다.
6년 뒤 이 130쌍을 추적해 보니 신혼일 때 상대의 연결 시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33%였던 커플은 이혼했다. 반면 잘 사는 커플은 연결 시도에 대한 긍정적 응답률이 87%나 됐다. 최 소장은 “‘오늘 날씨 좋다’ ‘배고파’ 같은 연결 시도에는 ‘놀러 가고 싶다’ ‘밥 먹자’처럼 원하는 것을 돌려 말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며 “배우자가 이를 알아차리고 잘 반응해 줄 때 스트레스가 낮아지고 부부의 긍정적인 ‘정서 통장’이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리 레이스 미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파트너(배우자) 반응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반응성이란, 배우자가 나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돌보며 지지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는지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도다. 반응성이 높은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의 생각에 관심을 보이며,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려 한다.
당연히 파트너 반응성이 낮으면 행복과 멀어진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 반응성은 스트레스 조절 능력뿐 아니라 10년 뒤 행복감과 조기 사망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모든 연결 시도에는 부드러움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 퇴근했는데 집이 어질러진 것을 보고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생각해 보자. 최 소장은 “‘아휴, 집이 이게 뭐야’라고 시작하면 갈등으로 이어질 뿐”이라며 “‘집에 왔는데 어질러져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 적어도 거실만큼은 깨끗하면 좋겠어’ 같이 부드럽게 시작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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