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경 간 이동이 제한되며 필수 의약품의 원활한 수급이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각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건 의료는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분야다. 동아시아 제약산업의 핵심축을 이루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달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CPHI & PMEC CHINA 전시장에서 뜻깊은 협약이 체결됐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KPTA)는 중국의약보건품진출구상회(CCCMHPIE), 일본의약품수출입협회(JPTA)와 함께 의약품 공급망 강화를 위한 3국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MOU는 글로벌 보건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 의약품 수출입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협약으로 기대되는 연간 경제 효과는 약 120억 달러, 한화로 16조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무역 거래를 넘어 재고 및 조달 비용 절감, 위기 대응력 제고, 무역 창출 및 전환 효과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협력은 각국의 강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3국 간의 협력을 이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해본다.
첫째, 인력 교류를 통한 공동 연구개발 활성화다.
한국은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은 활발한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에 신뢰성 있는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선 다국가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중 간 연구 인력과 인프라를 공유한다면 기술적·경제적 부담을 줄이며 상호 보완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둘째, 규제 대응과 정보 공유를 위한 정례 세미나 개최다.
일본은 의약품의 안정성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검증되지 않은 성분에 대해 매우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규제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 및 관련 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며 개정된 규정에 대한 정기 세미나 및 규제 담당자 간의 워크숍 운영은 실효성 있는 협력 모델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3국 간 협력 모델 구축이다.
한·중·일 위탁생산(CDMO) 협력을 위한 방안으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일본에 등록하고 이를 통해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는 형태의 글로벌 협업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제조 협력을 넘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전략적 제휴로 확대될 수 있다. 아울러 수입되는 원료 의약품 공급 중단을 경험했던 국내 제약사가 중국 및 일본의 원료 기업과 비상 공급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는 사례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방안을 통해 한국은 첨단 바이오 기술과 고품질 의약품 생산 역량, 일본은 정밀 제조 및 희귀 의약품 원료 기술력, 중국은 대규모 원료 의약품(API) 생산 및 공급 역량이라는 각자의 강점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MOU는 한·중·일 3국이 단순히 무역을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보건 위기 대응 역량을 공동으로 높이고 아시아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세 나라가 선택한 이 ‘연대의 길’은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동북아시아가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