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JCI 힘 잃은 지금이 한국 의료기관인증제도 도약 기회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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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전문위원

황인선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전문위원
황인선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전문위원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평가는 떠났고, 병원들은 남았다.”

국내 대형병원들이 한때 ‘글로벌 병원’의 상징이던 세계적인 병원평가 JCI 인증 갱신을 잇달아 포기하고 있다. JCI는 미국 일리노이주에 본부를 둔 비영리 민간기구로 병원의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기준으로 병원을 평가하고 인증한다. 전 세계 100개국 이상 병원들이 이 인증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07년 세브란스병원을 시작으로 고려대안암병원과 서울성모병원까지 인증을 받는 등 최대 20여 개 병원이 속속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엔 모두 인증 갱신을 중단하거나 취소했다. JCI 인증은 조용히 국내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증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행정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 인증을 받는 데 수억 원이 필요했고 갱신할 때마다 현장 실사, 사전 교육, 문서 정비, 컨설팅 비용까지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 병원 내 인증 준비를 위한 인력 배치 부담과 일선 부서의 피로감도 크고 수익과 무관한 업무를 지속하기엔 내부 저항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2010년부터 이를 대신하는 평가를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국가 차원의 법률에 근거한 의료기관인증제도를 도입해 15년 동안 운영하면서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또 네 차례 기준 개정을 통해 환자 안전과 의료 질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을 평가하는 명실상부한 주요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인증 결과는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사업, 의료 질 평가 및 정책, 제도의 실행 요건과 연계하는 등 실질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각국 보건시스템의 성숙도와 규제 수준을 평가하는 GBT(Global Benchmarking Tool) 기준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ML4 등급을 받아 ‘선진 운영 국가’로 분류된 바 있다. JCI 입장에서 한국 병원은 자연스럽게 더 이상 확장성이 없는 시장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JCI가 떠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국내 인증제도에 대한 글로벌 신뢰를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감염 대응, 디지털 역량, 의료인력 역량 관리, 데이터 기반의 성과 평가 강화 등 의료기관 전체를 포괄하는 거버넌스 중심의 질적 관리 제도로 발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평가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강력한 보건의료정책이나 제도와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또 JCI가 해외에 진출한 것처럼 한국형 인증제도의 해외 진출도 필요하다. 특히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아시아 지역의 인증제도 발전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시아 병원 관리자에게 한국형 인증 철학을 확산시키는 전략도 유효하다. JCI가 떠난 자리엔 공백이 아니라 기회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에 답을 줄 차례다.

#JCI#인증제도#병원평가#의료기관평가인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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