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혈액으로 암-재발 진단하는 시대, 국내 연구진이 연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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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서울시보라매병원 종양내과 교수

김진수 서울시보라매병원 종양내과 교수
김진수 서울시보라매병원 종양내과 교수
질병을 진단할 때 간편하고 안전한 검사 방법은 없을까. 최근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미국 바이오벤처 테라노스는 2003년 극소량 혈액으로 250여 개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기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며 거짓 신화는 붕괴됐다. 결국 2022년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새로운 항암제가 속속 개발되며 암 치료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전이암은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완치율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암 전문의들이 동의하는 것은 조기에 암을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암 조기 검진을 위해 사용되는 영상 검사는 일정 크기 이상이 돼야 발견할 수 있다. 췌장암, 폐암의 경우 상당 부분 전이된 뒤 진단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는 고도화된 정밀 기술로 다시 혈액 검사를 이용한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액체생검이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혈액 내 암유전자나 암세포를 검출하는 것이다. 워낙 양이 적어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필자와 고려대 안암병원 허준석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접목한 액체생검 기술로 암 조기 진단에 도전하고 있다. 크리스퍼로 알려진 유전자가위는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던 기술이다. 현재 유전자 교정을 통한 질병 치료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연구진은 검출 대상인 DNA와 염기서열이 하나만 달라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초정밀 유전자가위를 개발했고 원하는 DNA를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증폭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액체생검이 추구하는 극미량의 유전자 검출을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로 비유한다면 이 기술은 건초더미를 태워서 바늘을 쉽게 찾는 방법이다.

연구진은 최근 저명한 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에 연구 결과를 제출했고, 수월성을 인정받아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개발한 기술을 1, 2기 췌장암과 폐암 환자의 조직과 혈액에서 검출한 유전자에서 비교해 보니 일치도가 93%를 넘었다.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렵다고 알려진 췌장암도 간편한 채혈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암 치료를 받은 환자 상당수는 질환이 재발하기 때문에 적절한 정기 검진이 필요하다. 재발 진단에는 주로 영상 검사가 사용되는데, 보다 빨리 암 재발을 발견하기 위해 최근에는 액체생검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액체생검 연구는 해외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날이 머지않았다.

#액체생검#암 조기 진단#암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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