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의 미국시장 진출… 장기적 영향까지 분석했어야
‘AI시대, 쉬워지는 해킹’ 시리즈… 기업, 정부에 보안사고 주의 환기
‘일각에선…’식 출처불명 설명보다 전문가 해석-논평 인용해 써야
15일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사면, 한미 정상회담,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 등과 관련된 보도 내용을 두고 토론했다. 왼쪽부터 권석준 이준웅 최은봉 위원, 김종빈 위원장, 석병훈 정원수 위원.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사면이 지난달 11일 있었다.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충남 서산에 이틀간 500mm가 넘는 비가 내리고, 강원 강릉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등 이상 기후가 계속됐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체포돼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아일보 독자위원들은 15일 이런 내용과 관련된 보도를 놓고 토론했다.》
최은봉 위원=8월 18일자부터 게재한 〈노인 1000만 한국, 품위 있는 죽음을 묻다〉 기획 시리즈 기사는 돋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작년에 이미 10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이나 호스피스 같은 생애 말기 돌봄의료와 관련한 국가 정책을 어떻게 수립하고 관련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잘 짚었습니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사망자가 많아진 것을 두고 ‘다사(多死) 사회’라는 표현을 썼던데 다사 사회가 직면한 고민과 과제를 여러 방면에서 잘 다루었습니다. 미국 듀크대 연구팀 발표를 비롯해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 및 보고서를 곳곳에 반영해 시리즈 기사의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다만, 이 시리즈가 다소 많은 부분(연명의료, 방문간호, 치매, 임종 등)을 다루다 보니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석병훈 위원=8월 28일자 A1면 〈美군함, 韓서 제작 길 열린다〉 기사는 미국 정부가 한국 조선업의 지원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되는 법 개정을 우회하기 위해 의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밝혔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로 좋은 기사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미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한국의 조선업에 미칠 영향을 단기와 장기로 나눠서 분석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그동안 우리가 진출하지 못했던 미국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조선업 업황이 좋아질 수 있으므로 호재입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 조선업에 꼭 좋은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조선업의 노하우나 기술력이고 이걸 가져가고 싶어 합니다. 한국 조선업으로서는 경쟁자를 키워주는 것이 됩니다. 이런 부분까지 짚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빈 위원장=8월 12일자 A1면과 3면, 4면에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사면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A1면 톱 기사 제목을 〈조국-윤미향…첫 사면부터 정치인 대거 포함〉이라고 달았습니다. 이 제목만 봐도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을 왜 사면했느냐 하는 질책성이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면이 원래 취지인 국민통합 목적으로 쓰였다기보다는 주로 자기편을 살리기 위해서 사면권이 행사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잘 지적했습니다. A3면 기사의 제목을 〈사면 정치인-공직자 27명 중 19명 범여권…‘尹 검찰’ 수사 뒤집기〉라고 달았는데 ‘검찰 수사 뒤집기’라는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사면은 검찰 수사에 대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면은 확정된 법원 판결에 대해 하는 겁니다. 기사 내용을 정확히 다 읽어보지 않고 제목만 본 독자들은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 작은따옴표를 표시하기는 했지만 정치권의 적절치 못한 발표를 제목으로 뽑은 것은 부적절했다고 봅니다.
이준웅 위원=검찰개혁안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좋은 기사도 여럿 있었습니다. 검찰개혁을 급하게 체계 없이 하게 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사회적 약자들이 될 것입니다. 검찰개혁안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경찰의 수사 권력이 남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큽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의 사건 암장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동아일보가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보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검찰개혁안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때는 정치권 논쟁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국민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김 위원장=9월 12일자 A3면에 보도한 〈“내란특별재판부가 무슨 위헌이냐 입법-사법 다 국민 의지에 종속”〉 기사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특별재판부 설치가 무슨 위헌이냐고 말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삼권 분립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반대됩니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얘기했듯이 국가의 헌법을 문란케 하는 사안입니다. 국민의 주권 의지가 가장 위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아래 한 단계 내려가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은 모두 똑같은 권한입니다. 입법권이 사법권 위에 있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합의로 만들어진 헌법 정신과 규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할 것이 아니라 동아일보가 관심을 갖고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사법부 독립이 어떤 것인지 명백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석준 위원=챗GPT를 비롯한 많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이제 초등학생들도 이용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 막기는 어렵고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문제는 일반 사용자가 아니라 기업이나 정부 기관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곳의 사용자들인데 아직은 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9월 1일과 2일자에 쓴 〈AI 시대, 너무 쉬워지는 해킹〉 시리즈는 보안 사고와 관련된 주의를 환기하는 좋은 기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적 실험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큽니다. 어디에서 실험했는데 실제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더라고 하면 반드시 따라 해 보는 다른 실험이 또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 특정 기관에 하루에만 60만 건의 랜섬웨어 공격 시도가 있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공격 수치를 집계한 곳이 어딘지 함께 써주면 다른 기관들이 보안과 관련한 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최 위원=9월 10일자 A27면에 보도한 비비안 리 미국 서배너 경제인협회 회장 인터뷰 기사 〈“조지아주처럼 韓기업 덕 본 곳 없어…지역경제 큰 타격 받을 것”〉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 당시 상황과 현지 교민들의 분위기, 지역 상권과 노동력 문제, 비자 문제 등 많은 내용을 시의성 있게 전달한 좋은 기사였습니다.
이 위원=8월 27일자 A5면 〈트럼프 ‘숙청’ SNS글 1시간 뒤 한미 비서실장 핫라인 움직였다〉 기사에 “일각에선 친(親)트럼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일부 인사들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친중·반미’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한미 정상 관계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미국 보수 연합 등에서 활동하는 고든 창이 이재명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글을 언론 매체에 기고한 것도 소개합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을 두고 나중에는 왜 오해였다고 말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가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같은 식으로 보도하기보다는 해당 사안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해석과 논평을 구한 뒤 인용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 기사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석 위원=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에 관한 기사들은 대체로 정부 발표를 소개하는 데 그친 것 같습니다만 8월 30일자 3면 〈돌아온 슈퍼예산, AI혁신 3배로 증액…국가부채 1400조 첫 돌파〉 기사는 확장 재정이 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짚었습니다. 9월 1일자 A6면에 보도한 〈‘재정지출 구조조정’한다면서…70조 교육교부금엔 정작 ‘칼’ 안대〉 기사도 의무 지출 구조조정과 관련된 문제점을 다뤘습니다. 의무 지출 부문에 있어서 구조조정이 가장 필요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는 전혀 칼을 대지 않았는데 그게 바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지적했습니다.
권 위원=7월 18일자 A1면 기사 제목 〈이틀 새 519mm ‘200년 만의 괴물폭우’〉에서 ‘200년 만’이라고 쓴 것은 관행적인 표현으로 보입니다만 ‘20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면 과장된 수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표현보다는 기상학에서 사용하는 연간 초과확률로 표기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연간 초과확률은 평년 치를 크게 벗어나 극단적으로 많은 수치(강수량)를 기록할 확률을 말합니다. ‘200년에 한 번’보다는 ‘연간 초과확률 0.5%(200분의 1)’ 식으로 쓰는 게 정확한 정보입니다. ‘200년에 한 번’이라고 하면 데이터 추이를 보여주기도 어렵습니다. 1년이 지났다고 해서 ‘201년에 한 번’이라고 쓸 수도 없습니다. 연간 초과확률로 쓰면 올해 0.5%였는데 5년 뒤에는 1%, 10년 후에는 1.5% 이런 식으로 증가 추세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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