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고령의 장기집권 지도자가 악화시키는 중동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5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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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고령에 장기 집권 중이며 권위주의 통치로 일관하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왼쪽부터). ‘외부의 적’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도모하는 세 사람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의 갈등이 더욱 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헤란·예루살렘·뉴욕=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원래부터 ‘세계의 화약고’이며 최근 각종 분쟁으로 더 주목받고 있는 중동의 상당수 지도자는 공통점이 있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가 집계한 올해 인류의 기대 수명(73.5세)보다 오래 살았고, 집권 기간 또한 종신에 가까울 만큼 길다는 것이다. 이들은 권위주의 통치 방식으로 국내외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집권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86),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76),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90)이 대표적이다. 세 사람은 각각 36년, 17년 8개월, 20년 이상 집권 중이다.

하메네이를 포함한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이 쫓아낸 레자 팔레비 전 국왕의 재위 기간은 38년. 2500여 년간 존속했던 페르시아 군주제의 폐해를 없애겠다고 혁명을 일으켰는데, 정작 하메네이의 집권 기간이 전 국왕에 버금간다.

팔레비 정권은 비밀 경찰 ‘사바크’로 반대파를 숙청했다. 젊은 시절 사바크의 감시에 시달렸던 하메네이 또한 종교 경찰 ‘가시테 에르셔드’를 통해 반대파,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 등을 마구 잡아들였다.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가 부친의 뒤를 이을 차기 최고지도자 중 하나로 꼽히는 상황 또한 “신정일치 체제가 세습 군주제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 6월∼1999년 7월, 2009년 3월∼2021년 6월, 2022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세 차례 동안 장기 집권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단 한 명이 약 23%의 기간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두 번째 집권 시절의 부패 혐의로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이란과의 전쟁에 골몰하는 이유 또한 ‘실각하면 곧바로 감옥행’인 자신의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이다.

2005년부터 PA를 이끌고 있는 아바스 수반은 20년째 무능과 부패의 아이콘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집권 2년 만에 PA가 통치하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하마스에 내줬다. 수 차례 부패 의혹에 휩싸였고 이스라엘의 탄압을 이유로 총선 실시도 거부한다.

현재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넘어 PA가 다스리는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예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을 모두 직접 통치하겠다는 입장이다. 풍전등화 상황인데도 아바스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빈약하다.

세 사람은 절묘한 ‘적대적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메네이와 아바스는 반(反)이스라엘과 반미를 내세워 장기 집권을 정당화한다. 네타냐후 역시 본인 같은 강한 지도자만이 이슬람 국가에 포위된 이스라엘을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권위주의 통치자가 ‘외부의 적’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중도파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적대적 공생은 미국과 옛 소련의 냉전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당시 두 나라의 강경파들은 서로를 ‘악(惡)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를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세 지도자의 집권 동력 또한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다. 집권 연장에는 ‘적’이 꼭 필요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말살하려 들수록 상대방을 도와주는 모순에 빠진다.

세 지도자가 언제까지 집권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의 통치 방식이 바뀌지 않고 이들을 견제할 합리적인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중동의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동#장기 집권#권위주의#알리 하메네이#베냐민 네타냐후#마무드 아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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