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써야 할 돈을 쓰면서도 역대 최대인 27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했다. 하지만 연간 수조 원이 남아돌아 예산 낭비 논란을 빚는 70조 원 규모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은 손을 대지 않아 ‘무늬만 구조조정’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계와 학부모 등의 눈치를 보면서 민감한 재정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교육세 배분구조를 개편해 교육교부금 4100억 원을 줄였다고 했다. 하지만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교육교부금으로 배정하는 근본 구조는 건드리지 않았다. 교육교부금은 교육 수요에 관계없이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자동으로 증가해 올해 기준 70조3000억 원에 이른다. 최근 5년 동안 초중고교 학령인구는 30만 명 이상 줄었는데, 교육교부금은 오히려 연 15조 원 가까이 늘어난 기이한 구조다.
이런 불균형 때문에 나라 재정이 쪼들리는데도 전국 시도교육청 곳간은 넘쳐나고 있다. 다 쓰지 못해 이월되거나 불용 처리되는 금액만 연 5조∼8조 원에 달하고, 교육청이 쌓아 놓은 현금성 자산은 2023년 말 기준 18조7000억 원에 이른다. 돈이 남다 보니 멀쩡한 건물을 부숴 다시 짓거나 불필요한 교육기자재를 사들이고 학생들에게 공짜 노트북과 현금을 나눠주는 등의 심각한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출산 대응, 등록금 동결로 재정 고사 상태인 대학 교육 지원 등 필요한 다른 분야로 전용해 쓸 수도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교육교부금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면 향후 35년간 매년 25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저성장, 인구절벽 등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확장 재정을 추진하면서도 최대한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불필요하게 새는 돈부터 확실하게 막아야 한다. 교육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비율을 낮추고 교부금 지출 분야를 다양화하는 등 전면 개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눈먼 돈’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지출 씀씀이만 키운다면 나라 가계부를 제대로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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