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21일부터 전문직 취업 비자(H-1B) 수수료를 1000달러(약 140만 원)에서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로 100배 올렸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기업의 부담을 늘려 미국인을 더 많이 채용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가 고율관세 부과와 이민자 단속에 이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외국인 인재가 미국의 좋은 일자리를 얻는 데 또 하나의 장벽을 추가한 것이다.
매년 8만5000건 발급되는 H-1B 비자가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을 지탱해 온 핵심 동력이었던 만큼 빅테크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매년 1만 명 이상을 H-1B 비자로 채용해 온 아마존을 포함해 빅테크 기업들은 외국 국적 직원들에게 “미국을 떠나지 말고, 해외에 있다면 즉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미국 공항에선 비자 수수료 인상 소식을 접한 외국 국적자들이 출국 비행기에서 한꺼번에 내리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이번 조치는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한미 비자 협의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싱가포르(5400명)나 칠레(1400명)처럼 H-1B 비자에 한국 쿼터를 확보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지만 이런 강경 기류 속에 지난한 협상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잘 활용하면 한국이 글로벌 인재 유치전에서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유학 및 취업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국내 대학의 교수 채용에 과거에는 지원하지 않았을 법한 우수 인재가 지원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대학들도 장학금을 늘리고 편입 요건을 완화하며 유턴하는 미국 유학생 유치에 나섰다.
정부는 이제라도 ‘글로벌 기술 인재 허브’를 목표로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21년 기준으로 해외에 취업 중인 한국인 전문인력이 12만9000명에 달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국내로 돌아올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 H-1B 비자의 높아진 문턱을 넘지 못한 외국 이공계 인재 유치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필요한 비자 제도 개선, 연구개발(R&D) 지원 강화, 주거와 자녀 교육 등 정주 여건 보장에 대한 논의에도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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