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4세 남성이 몰던 구형 에쿠스 승용차가 골목에 밀집된 가게를 향해 돌진해 12명이 다치고 1명이 숨졌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2023년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운전면허 취소 기준에는 미치지 않아 면허를 유지해 왔다. 독자 제공
치매 진단 후 운전 가능 여부를 평가받은 운전자 가운데 면허가 취소되는 비율은 5%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운전적성판정위원회 평가를 받은 1235명의 치매 운전자 가운데 불합격한 사람은 58명(4.7%)에 불과했다. 나머지 1177명은 합격 또는 판정 유예를 받아 면허를 유지하거나 1년 후 재판정을 받을 때까지 운전대를 잡는 데 제약이 없어 교통사고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현행법상 치매로 장기 요양 등급을 받거나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받으면 도로교통공단으로 자동 통보돼 위원회 평가를 받는다. 연간 1만8000명가량이 평가 대상이 되는데 대부분은 스스로 면허를 포기하지만 매년 1000명 이상이 위원회 평가를 통해 면허를 유지한다.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과 판단력뿐만 아니라 감각 능력도 떨어져 건강한 고령 운전자보다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은데 불합격 판정 비율이 낮으니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치매 판정 후 면허 취소까지 최장 10개월이 걸리는 점도 사고의 위험을 키운다. 치매에 걸려도 단기 치료만 받거나 장기 요양 등급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 환자가 스스로 알리지 않으면 교통공단에서는 알 길이 없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13명의 사상자를 낸 70대 운전자도 2023년 치매 진단 후 3개월간 치료제를 복용했지만 이후로는 추가 처방을 받지 않아 면허를 유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초고령사회인 한국은 지난해 치매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2050년에는 300만 명을 초과할 전망이다. 치매 환자 운전 적성 판정의 실효성을 높이고, 합격 판정을 받은 경우라도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속도 제한이 있는 도로에서만 주행하거나 하루 평균 일정 거리 이하만 운전하게 하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또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도 현행 3년에서 단축하고, 고령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대체 교통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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