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을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영업자들에겐 희미한 기억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악몽이다. 당시 불어난 빚의 굴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 등의 영향으로 매출 급락을 겪은 자영업자들은 대출로 근근이 버티며 팬데믹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터널의 끝에는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라는 더 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19 때 진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더 내 빚을 막아야 하는 수렁에 빠져버렸다.
신용평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빌린 돈을 석 달 넘게 갚지 못한 자영업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말엔 1만 명 수준이었는데 4년 새 10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연체된 대출액도 3조7700억 원에서 27조 원으로 7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소득기반 없이 막 사업에 뛰어든 20대와, 은퇴 후 제2의 삶을 꿈꾸던 60대 이상 자영업자들의 연체 속도가 특히 가팔랐다. 쉬는 날 없이 밤늦도록 일해도 대출이자조차 갚기 벅찬 ‘허울뿐인 사장님’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계속하기도, 사업을 접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 대출 상환 부담과 만만찮은 폐업비용 때문에 적자를 보면서도 가게를 여는 경우가 많다. 장사를 접고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장기화된 고용 한파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로 빚을 지고 자영업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는 사이 부채의 양이 늘어나고 질도 나빠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소득·저신용 상태에서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취약차주의 비중은 6월 말 현재 14.2%로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자영업자 비중이 전체 취업자의 2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방치할 경우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이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코로나19 때 빌린 자영업자 대출의 만기를 6개월 단위로 연장해주고 있지만 근본적 해법은 될 수 없다. 상환 능력과 의지를 살펴 맞춤형 채무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퇴로도 열어주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빚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재기의 사다리를 놓아 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