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1, 2부는 조직도에 이름만 있는 ‘유령 부서’나 다름없다. 검사가 부족해 이들 부서는 부장, 평검사 모두 공석이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25명이지만 실제로 근무 중인 검사는 처·차장을 포함해 14명으로, 검찰로 치면 중간 규모 지청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하는 검사들만큼 충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가 8개월 동안 신규 임용을 해주지 않고 뭉개면서 벌어진 일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애당초 공수처를 마뜩잖게 여겼다. 대선 후보 시절 “공수처에 엘리트는 안 가고 3류, 4류가 간다”는 비하성 발언을 내놓는가 하면 “공수처가 정치화된 데서 벗어나지 못하면 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다른 기관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한 공수처의 이첩요청권 폐지가 포함됐다. 검경도 독자적으로 고위공직자의 부패 범죄를 수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상 공수처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공수처법에서 이첩요청권을 삭제하는 방안은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무산됐지만, 윤 전 대통령에게는 인사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었다. 공수처 검사는 3년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연임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 눈 밖에 나면 임기 만료 뒤 짐을 싸야 한다. 민감한 사건을 수사하는 공수처 검사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연관된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을 담당하는 공수처 검사들의 연임안 결재를 미루고 미루다가 검사 임기가 끝나기 53시간 전에야 재가하는 ‘몽니’를 부렸다.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공수처 검사들도 이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공수처 검사의 임용 역시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데, 있는 사람도 내쫓길 판에 인력 충원은 언감생심이었을지 모른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검사 3명 신규 임명을 추천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끝내 재가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뒤인 올해 1월 공수처는 추가로 검사 4명 임명안을 올렸지만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부총리 역시 결재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윤 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 뒷사람에게 미룬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대대대행’인 이주호 권한대행이 이들 공수처 검사 7명을 25일자로 임명하는 안을 재가하면서 공수처는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렇다고 윤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 수사, 채 상병 외압 수사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주요 사건들을 수사하는 공수처의 인력난을 일부러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치졸한 방식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방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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