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항복하라.” “당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겨냥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이란은 13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 때문에 군 참모총장을 잃었고, 핵 시설과 미사일 기지가 파괴됐다. 이런 국면에 트럼프 대통령마저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던지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해외 군사 개입을 극히 꺼려 왔던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에 나선 것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겉돈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란은 무기급에 가까운 60% 농축우라늄을 비밀리에 비축했고, 유엔은 그 규모가 408kg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공언하는 이란이 몇 개월 내로 핵무기를 확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몇몇 핵 시설은 파괴됐지만, 수도 테헤란 남쪽 산악지대의 포르도 핵 기지는 손대지 못했다.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가 지하 80∼100m에 숨겨진 곳이다. 미국의 벙커버스터(GBU-57)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올 2월, 4월 2차례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4월엔 포르도 기지 사진까지 제시하며 지하 목표물을 파괴하는 벙커버스터 사용을 적극 설득했다. 탄두 중량만 13t으로, 미 공군 B-2 스텔스 폭격기로만 실어 나를 수 있는 초대형 폭탄이다. 지상군 투입 없이도 이란 지하 핵시설을 직접 때릴 수 있다. 미 공군은 단발이 아니라 여러 발을 조율된 타이밍에 동시 투하하는 훈련을 지난 2년간 해 왔다. 당시 회담 때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요청을 거절했다.
▷벙커버스터를 쓴다는 것은 미국의 정식 참전을 뜻한다. 트럼프의 대외 분쟁 불개입 철학과 상충해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다. 방사능 유출에 따른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이란이 중동 내 미군기지를 공격할 땐 확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트럼프 참모들은 “대통령의 신념을 관철시키자”는 쪽과 “어느 대통령도 못 한 이란 핵 제거를 트럼프가 해내야 한다”는 쪽이 맞서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동안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자랑처럼 말해 왔다.
▷안팎으로 꽉 막힌 미국의 사정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벙커버스터 사용 옵션을 솔깃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는 “내가 취임하면 모든 전쟁을 다 멈춰 세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우크라이나 등에서 휴전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상호관세 협상이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도 논란이 크다. 트럼프에겐 벙커버스터와 관련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군사적으로 파괴하거나, 사용할 것처럼 구두 압박 수위를 높여간 뒤 이란이 핵 포기 문서에 서명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평소라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지만, 전면전이 시작된 지금은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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