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서 가상의 걸그룹이 부른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K팝 가수 중엔 BTS가 핫100, 싸이가 톱100 1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영미 차트 동시 석권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온라인에선 케데헌 세계관을 분석하고 캐릭터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영상이 줄을 잇고 있다. 케데헌 ‘현상’이라 할 만하다.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 기록도 세웠다. 골든을 부른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몰래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며 악령 보이그룹 사자보이스로부터 팬들을 지켜낸다는 줄거리로, 국적을 초월한 협업의 산물이다. 서구의 악마 사냥과 한국적 무속신앙이 결합된 세계관부터가 그렇다. 제작사는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며, 노래는 K팝 작곡가들이 만들고 K팝 가수와 미국인 가수들이 불렀다.
▷그럼에도 케데헌은 K팝 콘텐츠로 분류된다.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돌과 ‘떼창’으로 환호하는 팬들이 만들어 내는 K팝 특유의 에너지가 영화의 핵심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같은 한국어 노랫말이 중간중간 나오는 것도 K팝 스타일. 케데헌의 주인공은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고 악령들과도 끝내 화해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감을 주는’ 선한 영향력은 K팝을 다른 팝들과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케데헌 속 캐릭터들은 영어로 말하고 노래하지만 하는 행동은 한국인 같다. 소파에 기대어 바닥에 앉고, 김밥과 순대와 라면을 먹고, 국밥집에선 수저 아래 휴지를 깐다. 힘들 땐 한의원과 목욕탕도 간다.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강남과 종로 거리가 정겹고, 남산 서울타워와 낙산공원 성곽길을 보면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과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한국계 외국인 제작진들, 그들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낯설고도 친숙한 서울일 것이다.
▷아이돌 댄스 음악을 뜻하는 K팝의 시작은 1996년 H.O.T의 데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세 번의 기념비적 순간이 있었는데 첫째는 아시아의 뜨거운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던 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두 번째가 유럽 진출의 신호탄이 된 2011년 SM타운의 프랑스 파리 콘서트, 세 번째가 ‘K팝 인베이전(침공)’이라 불렸던 2020년 BTS의 K팝 최초 빌보드차트 핫100 1위 등극이다. 세계가 만들고 가상의 아이돌이 부른 골든의 영미 차트 석권은 K팝 30년 역사의 또 다른 기념비적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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