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트럼프 비판한 옛 참모들 하나둘 수사대상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24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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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 참모들에게 얼마나 조롱 대상이었는지는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 잘 묘사돼 있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갓 부임한 볼턴에게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무대 뒤에선 “트럼프는 허풍쟁이”라고 비하하곤 했다. 볼턴 역시 트럼프에 대해 “제멋대로 구는 무식쟁이”라고 썼다.

▷트럼프가 볼턴을 안보보좌관에 기용할 때만 해도 둘 사이는 돈독했다. 1기 행정부 초기 ‘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던 참모들이 트럼프의 충동적 외교 정책에 번번이 제동을 걸자 그 대안으로 불러들인 게 강경 매파인 볼턴이었다. 볼턴은 수시로 트럼프와 독대하고 각국 정상회담 때마다 배석하던 최측근이었다. 그랬던 볼턴이 트럼프와의 불화 끝에 경질된 후 작심하고 쓴 회고록이었기에 파장이 컸다. 게다가 출간 시점이 미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둔 2020년 6월이었다. 트럼프는 기밀 누설로 감옥에 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출간을 막진 못했다.

▷그 경고대로 미 법무부는 볼턴을 제소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수사는 종결되고 소송도 취하됐다. 출간을 둘러싼 소동이 그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4년 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다시 반전됐다. 연방수사국(FBI)은 최근 볼턴의 자택을 기밀 정보 유출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볼턴은 며칠 전에도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가 푸틴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트럼프는 “저급하고 비애국적인 인물”이라며 비난했다.

▷이 수사를 지휘하는 캐시 파텔 FBI 국장은 ‘친(親)트럼프’ 인사다. 2023년 ‘정부의 깡패들(Government Gangsters)’이란 책을 내 트럼프의 눈에 들었다. 책에는 ‘행정부의 딥스테이트 회원들’이란 제목의 60명 명단이 실렸다. ‘딥스테이트’는 트럼프가 자신의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엘리트 관료 집단을 지칭해 써온 말이다. 그 60명 중 한 명이 볼턴이다. 함께 언급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4명도 수사를 받고 있다. 명단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인사들뿐 아니라 트럼프 밑에서 일하다 갈등을 빚었던 참모들이 대거 포함됐다.

▷명단 속 60명 중 5명이 수사를 받게 되자 트럼프의 정적을 추린 블랙리스트란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명단 작성자가 FBI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명단에 오른 사람들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배신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전례를 만드는 셈이어서 지금의 트럼프 참모들에겐 충성심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위협처럼 느껴질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존 볼턴#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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