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7년 만의 美 정부 셧다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9일 2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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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제(태평양전쟁 때 일본 자폭 특공대) 같은 공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연방정부 ‘일시 업무 정지(셧다운)’를 민주당 탓으로 돌렸다. 다음 회계연도(2025년 10월∼2026년 9월) 예산안에 여야가 합의하는 데 실패하자, 정부 마비를 야당의 발목 잡기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자신의 의사가 담긴 예산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수의 연방공무원을 ‘영구 해고’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 정부는 1일 0시부터 돈이 들어가는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를 중단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12월 말부터 35일간 지속된 최장 셧다운 이후 약 7년 만이다. 미국에선 여야가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할 때 이런 행정 공백이 발생한다. 80여만 명의 연방 공무원은 곧바로 강제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일터를 지켜야 하는 경찰·소방 등 필수 업종 공무원의 월급 지급도 중단되고, 셧다운이 끝난 뒤에야 정산을 받는다.

▷예산안의 최대 쟁점은 ‘오바마 케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저소득층 공공의료보험 가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도입했는데, 올해 말 시한이 끝난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삭감한 관련 예산의 복구를 주장하고, 공화당은 민주당이 미국인의 세금으로 불법 이민자에게 헬스케어 보조금을 주려고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하원은 10월 말까지 전년도와 같은 정부 지출을 유지하는 셧다운 회피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 통과만 남았는데, 이제까지 6차례 투표는 부결됐다. 상원의 무제한 ‘필리버스터(토론을 통한 의사 진행 방해)’를 돌파하기 위해선 60표가 필요한데 공화당의 의석은 100석 중 53석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는 커지고 있다. 급여를 못 받는 공항 관제사 일부가 병가를 내면서 항공편 지연이 급증했다. 셧다운이 언제 끝날지 몰라 ‘우버 택시’를 운전하며 주택담보대출 상환금, 생활비를 버는 관제사들도 있다고 한다. 정부의 물가·고용 관련 통계 발표도 중단됐다. 연방 공무원의 소득 감소가 소비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셧다운이 한 주 길어질 때마다 약 21조 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추산도 있다.

▷인공지능(AI) 낙관론에 힘입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 증시는 “협상은 없다”며 버티는 트럼프의 심리적 뒷배가 되고 있다. 과거 발생한 셧다운 때 증시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경험도 작용했다. 다만 경제의 미래가 불확실할 때 상승하는 ‘안전자산’ 금의 가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달러 가치는 약세를 보이면서 세계 최강국의 정치 혼란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셧다운#연방정부#예산안#오바마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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