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전공의 모두 돌아올 필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8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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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의정 갈등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의대 증원을 철회했는데도 의대생은 꿈쩍하지 않는다. 전공의 추가 모집에 필기시험 면제, 입영 특례까지 안겨줘도 전공의 복귀율은 미미하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쓴 것 같다.

의정 간 협상이 시작돼도 2000명 증원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전공의 10명 중 6명은 취업을 했다. 병원도 전공의 없는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 차라리 이런 ‘뉴노멀’을 의료 시스템을 개혁할 적기로 삼아야 한다. 어차피 고장 났다는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한국 의료 기적 뒤엔 전공의 희생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48년간 한국 의료는 기적적인 성공을 이뤘다. 환자들은 쉽게 병원에 갈 수 있고, 덕분에 의술도 집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낮은 보험료-낮은 수가’로 인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고 미용·성형시장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은 수익 보전을 위해 전공의를 저임금으로 희생시켜 왔다. 의대 졸속 증원이 기폭제가 됐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터진 것이다.

올해 상반기 인턴 모집 정원은 3356명이다. 의대 졸업생보다 많다.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정원은 3954명이다. 역시 인턴 정원보다 많다. 전공의를 싼 인력으로 보고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모집하려 한 탓이다. 올해 전공의 모집 인원은 소아청소년과 206명, 산부인과 188명이었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어 과가 없어질 판인데 관성적으로 많이 뽑는다. 이러니 주당 80시간씩 일하며 수련을 마쳐도 병원에 남을 기회는 제한적이다. 올해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모집 정원은 164명이다. 전부 교수로 임용되기 어려운 규모다. 전공의들은 양질의 교육보다 장시간 근무만 강요하는 고된 수련 과정을 참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한다.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순순히 수용해도 취업한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은 적다.

결국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고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 대신 전공의는 적정 숫자를 선발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최근 대한의학회는 ‘중구난방’ 수련 과정을 표준화하고, 수련병원을 평가·인증하는 전공의 수련교육원 도입을 제안했다. 아울러 전공의 교육을 전담하는 지도전문의를 충원하고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전공의 이탈로 교수가 기존처럼 진료, 임상, 교육이라는 ‘1인 3역’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에서 수련 과정의 질을 담보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고질병 고치려면 과감한 집도를

정부는 전문의 양성 트랙의 이원화도 검토했다. 종합병원 이상에 근무할 세부 과목 전문의와 개원가로 나갈 일차 의료 전문의를 분리 양성하는 것이다. 의정 갈등 와중에 설익은 채로 발표돼 ‘인턴 2년제’라는 의료계 반발에 밀려 후퇴했다. 하지만 일차 의료 전문의가 굳이 중환자실 당직 근무를 서거나 뇌수술을 배워야 할까. 고령화로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주치의 등 일차 의료 수요는 폭증할 것이다. 만성질환자가 지금처럼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반복하고 진료과를 전전한다면 환자도, 의사도, 건보 재정도 손해다. 수련 기간을 단축해 일차 의료 전문의를 배출하고 미용, 성형에 쏠리지 않도록 수가 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우리 의료가 앓고 있는 고질병을 몰랐으며 의료계가 이런 수술법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막대한 비용 투입과 건보료 인상으로 귀결되므로 대증요법만 썼을 뿐이다. 그래서 새 정부의 의료 개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적 부담을 덜고자 의정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전공의 복귀로 끝이 아니다.

#의정 갈등#전공의 복귀#의료 시스템 개혁#전문의 양성#의료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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