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택동]‘성역 있는 수사’로 존폐의 기로에 선 檢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5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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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논설위원
장택동 논설위원
살아 있는 권력에 수사의 칼끝을 겨눈다는 건 때론 목을 걸어야 하는 험난한 일이다. 그래서 ‘법조 3성(聖)’ 중 한 명이자 ‘대쪽 검사’로 평가받는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도 1949년 임영신 상공부 장관을 수사할 당시 “앞으로 불어닥칠 회오리바람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에 착잡했다”고 회고했다. 임영신은 이승만 대통령에게서 청혼받았던 것으로 알려질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당시 정부의 실세였다. 외압이 거셌지만 최대교는 임영신을 수뢰 등 혐의로 기소했고, 이 일로 옷을 벗었다가 4·19혁명 뒤 복직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는 검찰의 전체 업무 가운데 극히 일부이지만, 검찰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다. 최대교 같은 검사들이 ‘성역 없는 수사’에 주춧돌을 놨고, 민주화 이후 검찰은 현직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등 권부 핵심에 대한 수사를 주도했다. 수사 배경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검찰이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지지를 보냈다.

지금 검찰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권-수사권 분리’를 공약했고 국정기획위원회는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검찰개혁 4법’을 내놨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권 자체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을 진행할 때 찬반 여론이 팽팽했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여권 “기소권-수사권 분리”… 관건은 여론

그동안의 검찰개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은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대폭 줄었다. 다음 단계는 기소권-수사권 분리가 되리라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은 검사의 수사권에 대해 침묵한다”며 수사권을 검찰의 헌법상 권한으로 인정하지 않은 만큼 검찰이 수사기관으로 남기 위해선 여론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측면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은 검찰에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결기를 보여줬다면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풀 꺾였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반대로 갔다. 대표적으로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디올백 수수 의혹을 조사하자고 했던 서울중앙지검장이 전격 경질됐을 때, 새 수사팀이 김 여사를 ‘출장 조사’하고 불기소 처분했을 때 검찰 수뇌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도이치 사건에 대한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한 법무부 장관의 지시가 계속 유효한지는 논란이 있다. 후임 총장이 김 여사를 기소하도록 지휘한 뒤, 이 지휘가 적법한지는 나중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랬다면 검찰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검찰엔 두고두고 뼈아픈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尹 힘 빠진 뒤 돌변한 檢… 민심은 냉담

그랬던 검찰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돌변했다. 서울고검은 도이치 사건 재수사에 나선 지 한 달여 만에 김 여사의 연루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녹음파일을 대거 찾아냈다. 김 여사가 ‘건진법사’를 통해 샤넬 가방 등을 받았는지도 윤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명태균 씨 수사 역시 윤 전 대통령 직무 정지 뒤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돼 속도가 빨라졌다.

이는 검찰이 ‘성역 있는 수사’를 했었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힘 빠진 권력을 향해 추상같은 수사에 나선들 냉담한 민심을 돌릴 수 있겠나. 검찰 해체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대수술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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