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현수]관세전쟁 본질은 기업 일자리 쟁탈전

  • 동아일보

코멘트
김현수 경제부장
김현수 경제부장
관세전쟁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소비시장 ‘접근권’의 값어치에 수백조 원이 매겨지는 것을 보며 든 생각이다. 유럽연합(EU)이 6000억 달러, 일본은 5500억 달러, 우리는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법적 근거는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다. 안보나 경제 위기 시 대통령이 자의적인 관세 부과 권리를 갖는다. 백악관이 지목한 국가 비상사태는 ‘크고 지속적인 무역적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월스트리저널(WSJ) 등 외신은 “한국이나 일본, EU가 내놓은 천문학적 투자는 미국 자본수지 흑자를 증가시켜 장부상 무역적자를 포괄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관세 협상 타결의 핵심 열쇠인 대미 투자가 관세 협상의 원인이던 미국의 적자를 더 키우는 셈이 된 격이다.

美 소비시장 무기로 제조업 유치에 혈안


그렇다면 미국발 관세전쟁의 궁극적 목적은 글로벌 제조업의 미국 유치에 좀 더 무게가 실려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세계 최대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와 월가에 몰려 있지만 정작 중산층 일자리를 만드는 제조업을 미국 땅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것도 물론 포함된다.‘트럼프 무역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 첫 장은 자신의 고향 오하이오주 애슈터뷸라의 쇠락으로 시작한다. 1970년 이전만 해도 그의 고향에선 고등학교 학력 이하 주민들도 자동차 부품이나 철강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면 가족과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 무역 철학의 부재로” 철강 수입은 늘고, 일본 자동차가 기승을 부려 고향 도시가 쇠퇴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테크나 금융 산업은 특성상 자본과 인재가 몰려 있는 대도시 중심에 위치해야 하고, 고학력 전문가 중심의 일자리라 제조업과 다르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올해 5월 본보가 주최한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도 미국의 양극화가 커지고 있고 이는 불공정 무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산층 일자리 되찾기’와 ‘지역 균형발전’이 트럼프 행정부 관세정책의 주요 목적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포스트 관세전쟁, 치열해질 각국 기업 유치전

그런데 중산층 일자리나 지역 균형발전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의 시급한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일본이나 EU도 제조업 일자리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도요타는 이미 자국 생산기지를 떠나 미국 판매 차량의 절반가량을 미국에서 생산한다. 중국이 자동차, 전자, 화학, 정유, 철강산업을 전방위적으로 휩쓸면서 EU의 제조업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일본이나 EU가 미국에 고개를 숙이고, 수백조 원을 지불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 역시 미국이 가져오고 싶어하는 제조업과 중산층 일자리였다.

한국도 민관 총력전 끝에 관세 인하를 얻어냈다. 민관이 나선 이유 역시 우리 산업을 보호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 제조업도 관세 전쟁 이전부터 흔들려 왔다. 전국의 산업단지들은 이미 생존의 기로에 서 있고, 대기업들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보조금 당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채찍에 해외 투자로 내몰리고 있다.

이제 관세 협상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다. 대미 투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다른 경쟁국도 마찬가지라 글로벌 기업 유치전, 일자리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산업이 전환되고 중국의 공습이 거세질수록 각국은 더욱 보조금이나 규제 완화 등 온갖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자국 소비 시장을 무기로 생산시설 이전을 요구하는 곳도 나올 수 있다. 우리는 준비가 됐나. 더 세진 상법개정안, 노란봉투법, 증세 정책을 보면 아직 우리가 치러야 하는 전쟁의 본질을 정부와 여당은 모르는 듯하다.

#관세전쟁#미국 소비시장#제조업 유치#무역적자#대미 투자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