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공공기관장 자리 놓고 또 ‘바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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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공공기관장 후보를 공모하고, 외부 전문가들이 과반수인 추천위원회가 후보군을 평가해 대통령이나 장관이 기관장을 임명하는 제도가 처음 생긴 건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다. ‘낙하산, 이제는 아닙니다’라는 당시 홍보자료에는 도입 취지가 잘 나와 있다. 정부가 출연했거나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은 정부가 할 일을 대신 처리하는 또 다른 정부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장도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니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을 투명하게 뽑아서 임기를 보장하고, 공공기관을 혁신하자는 것이다. 지금 봐도 너무나 상식적이다.

‘낙하산’ 막으려고 만든 법, ‘알박기’로 퇴행

처음 의도했던 대로 정권이 바뀌면 집권 세력이 전리품처럼 300곳 이상의 공공기관장 자리를 한꺼번에 나눠 갖는 ‘낙하산 인사’ 관행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2년 또는 3년이라는 틈새를 파고들어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때로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 난 이후까지, 기관장을 집중적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알박기 인사’ 관례가 새로 생겼다. 정권 교체나 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중도 퇴임시키려는 쪽과 버티는 쪽이 충돌했다.

국회도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비상계엄 두 달 전인 작년 10월 국회 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발언이 단적인 사례다. “대통령제하에서 계속 (공공기관장 등의) 임기 조항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까. 자승자박하는, 바보게임 더 이상 그만하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보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공기관장 임기를 2년 6개월씩 두 번으로 해서 대통령의 5년 임기와 맞춰 나가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도 비슷한 입법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행 시기를 놓고 당장 적용이냐, 차기 정부부터냐로 다투다 법 개정을 하지 못했다.

정권 교체 이후 민주당은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임명 당시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면 공공기관장의 임기도 만료되고, 특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교체되면 새 정부 출범 6개월 안에 직무 평가로 기관장을 해임할 수 있도록 했다. 누가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을 겨냥한 것이다. 현행 제도로도 실적이 부진한 기관장을 해임할 수 있는데, 굳이 이런 입법이 필요할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농단을 명분으로 환경부 산하 기관장을 일괄적으로 바꾸려다 인사권 남용으로 유죄가 확정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비상계엄을 이유로 법을 뜯어고친 뒤에 비슷한 일을 하겠다는 것으로 의심받을 것이다.

지자체보다 못한 국회 ‘공공기관장 해법’

정부나 공공기관이나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필수적이다. 대통령과 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면 기관장이 지금보다 더 자주 바뀔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라도 있는 시기라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관장이 정치적 행위를 할 우려도 있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에선 2, 3년 전부터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고 국회보다 앞서 단체장과 산하 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소한의 소모적인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신사협정을 맺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국회가 지자체를 못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소모적인 충돌을 막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최악을 피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능한 인재를 공공기관에 배치해서 그 조직이 자율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자는 것이 공공기관운영법의 제정 취지다. 이미 20년 가까이 그 원리대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 제도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여야 합의로 최소한 막장극이라도 막아달라고 기대 수준을 오히려 낮춰야 하는 척박한 정치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공공기관장#낙하산 인사#알박기 인사#공공기관운영법#정권 교체#정치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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