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이민 당국의 한국인 300여 명 체포 장면은 태평양 건너 이를 지켜본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현지에 공장을 짓겠다며 땀 흘리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 근로자들이 케이블 타이나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가고 있었다. 미 국토안보수사국은 이 동영상을 보란 듯이 공개했는데, 집단 중범죄자나 된 것 같은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워 한국에 대한 신뢰 하락을 부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양국 경제협력이 본격화된 이후 미 당국이 한국을 이렇게까지 거칠고 무도하게 다룬 적은 없었다.
조지아를 비롯해 불법 이민자 단속의 타깃이 된 주(州)에서는 이미 수차례 논란이 된 사례들이 속출했다. 시민권자로 미군 복무 경력도 있는 한 히스패닉계 남성은 운전하던 차량이 신호등에 걸린 틈에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에게 붙잡혔다. 막무가내로 끌려가 구금됐다가 사흘 만에 풀려날 때까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SNS를 통해 공유되는 영상들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특수작전하듯 달려드는 무장요원들의 검거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제2의 美조지아주 사태’ 벌어질 수도
미국판 ‘충격과 공포’ 작전의 강도가 이 정도이니 아무리 동맹국이라지만 외국인들의 항의는 씨알도 안 먹히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관광비자로 들어온 독일인, 배낭여행을 끝내고 출국하려던 영국인도 예외 없었다. 150명 가까이 붙잡힌 캐나다인 중에는 4세 미만 유아 2명도 포함됐는데, 이 중 한 아이는 7주 넘게 구금됐다. “파시즘” “인종주의” 같은 비판이 불붙는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ICE의 작전을 지원하라며 주요 도시에 주방위군까지 투입했다. 마가(MAGA)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늘어난 단속 할당량을 채우려는 조급함도 엿보인다.
조지아주 한국 공장 검거는 굳이 보여주기식 성과를 낼 필요가 없었다면 비자 문제에 대해 행정지도를 먼저 하거나 경고 절차를 거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그러는 대신 일망타진 식으로 공장을 급습하곤 단일 사업장에서 진행된 가장 큰 검거 사례라고 홍보했다. 하원의원에 출마했다는 공화당 정치 지망생 제보자는 “내가 신고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이런 정치적 계산이 자국 내의 혼란 유발을 넘어 동맹과의 외교관계까지 흔드는 대외 리스크로 번지는 것은 우려스럽다. 구호와 선동이 앞서는 국내 정책이 대외적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 세련된 외교적 대응도 매끄러운 조율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할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잔뜩 움츠러든 채 힘을 못 쓰는 형국이다.
美 국내 정치 파장까지 보는 외교 필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마가 정책’들은 대외적으로 한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 과학기술 협력 등 전방위적으로 언제든 ‘제2의 조지아주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 측의 항의에 미국이 뒤늦게 협의에 나선다 해도 피해는 되돌리기 어렵다.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 문제만 봐도 그렇다. 국무부와의 조율 없이 에너지부가 내린 조치로, 곧 풀릴 것이라던 올해 초 설명과 달리 아직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미국 내부 상황과 이에 따라가는 국내 정책들을 살피는 것까지 외교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지지자 결집이라는 정치적 수요가 커질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유사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는 국민적 분노가 과격한 반미 여론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동시에 필요시 정부가 미국에 단호하게 맞대응하는 결기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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