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대표 교육 공약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안이 올해 안에 확정된다고 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 9곳을 서울대 같은 명문대로 키우겠단 구상이다. 구체적으론 서울대(6300만 원)의 40% 수준인 거점 국립대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2520만 원)를 70%까지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4조 원 예산을 추가 투입한다.
이걸 왜 할까. 사업의 목적을 찾기 위해 정부 발표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크게 두 가지였다.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화 완화’와 ‘국가 균형성장 달성’. 그리고 머릿속에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방 학생들은 왜 수도권 대학으로 몰릴까. 교육·연구 인프라의 격차 때문일까. 실제론 취업 때문 아닐까. 만약 지역 대학에 우수한 학생이 많이 진학한다면 그 지역이 발전할까. 이들이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 버리면 남는 게 없지 않을까. 졸업생이 지역에 남으려면
결국 중요한 건 일자리이다. 수도권 쏠림을 막고 국가 균형성장을 이루려면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할 기업을 지역이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실험실과 산업 현장이 연계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게 바로 정부가 추구할 대학 혁신의 방향이다.
그럼, 대학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기업이 호응할 수 있을까. 이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산업이 무엇이냐의 문제다. 대학 교육은 미래 인재를 키우는 일이고, 어떤 인재를 기를지는 곧 어떤 산업을 육성하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이미 답을 내놓은 바 있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이란 슬로건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대’는 대학 혁신의 롤모델이 될 수 없다. 서울대는 분명 우수한 대학이지만 모든 분야를 다 아울러야만 하는 종합대학이기도 하다. 두루두루 다 잘하는 만능의 대학을 따라가기엔 시간과 예산 모두 촉박하다. 2030년까지 고작 4조 원 예산을, 그것도 9개 대학에 나눠서는 턱도 없다. 자칫 예산 나눠 먹기 식에 그칠 우려가 있다.
대학 혁신의 롤모델은 어디인가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서울대가 아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모델이 답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가 콕 집어 언급했을 정도로 KAIST는 AI 연구에 있어 한국 최고의 대학이다. 미국 평가 사이트 CS랭킹 기준으로도 AI 분야에선 KAIST(6위)가 서울대(16위)를 앞선다. 40년 가까이 이공계 특성화 대학으로 한 우물을 판 결과다.
이미 지방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한국에너지공대(KENTECH) 같은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운영 중이다. 공학 분야에 특화된 지역 거점 국립대도 있다. 경쟁력 있는 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면 제2, 제3의 KAIST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파격적인 국가 지원으로 단기간에 AI 명문대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2019년 설립한 세계 최초의 AI 대학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AI 대학(MBZUAI)이다. 불과 설립 6년 만에 AI 분야에서 서울대와 맞먹는 세계 18위 대학으로 평가됐다. 해외 석학을 대거 유치하고, 100% 장학금 혜택을 주면서 전 세계 우수 학생을 끌어모은 결과다.
이런 주장이 교육계에서 받아들여질 것 같진 않다. 교육부가 어렵게 끌어온 예산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과학기술원과 나누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높은 부처 간 장벽을 생각하면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지방 국립대를 살릴 것이냐, ‘KAIST 10개 만들기’로 지방을 살릴 것이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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