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의 등장을 예견한 단편소설이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오류 불허’다. 이 예측이 놀라운 이유는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철저한 논리적 추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한 작가는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는 컴퓨터를 구매하고, 이 컴퓨터는 점차 작가의 문체를 익혀 마침내 독자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 그 과정은 현재 생성형 언어모델의 발전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우리도 이제 알파고와 챗GPT 이후의 AI 발전을 논리적으로 예측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점에 있다.
지금까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겼던 영역들도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알파고는 단순히 바둑을 잘 두는 AI가 아니다. 복잡한 추론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발표한 ‘알파이볼브’는 스스로 새로운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개선한다. 전문 연구자 역할마저 AI가 맡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향후에는 알파고 같은 AI 시스템조차 AI가 설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은 50년간 풀리지 않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알파폴드’로 해결해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알파폴드는 실험 없이 단백질 구조를 정확히 예측하는 혁신적 기술로, 기초과학과 산업을 연결하는 대표 사례가 됐다. 허사비스 CEO가 설립한 AI 신약 개발 기업 ‘아이소모픽랩스’는 최근 8000억 원의 첫 외부 투자를 유치했고, 공동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창업한 ‘자이라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1조4000억 원의 초기 투자를 받았다.
AI는 이제 생화학 문제를 넘어 다양한 과학 난제를 해결하고 첨단산업 창출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내 AI 담론은 다소 한정적인 시야에 머물러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 AI’ 발전 전략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이미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에서 AI 활용이 늘어나고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과학 AI 투자와 첨단산업으로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가 차원에서 논의 중인 100조 원 규모의 AI 투자가 실질적인 혁신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아시모프 같은 천재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관료적 구조에서는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큰 성과 없이 흩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그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관료적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된, 진정한 전문성을 갖춘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국가 AI 전략 수립 기관과 실행 기관을 각각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전략 수립 기관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하되, 다른 행정조직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고 독자적인 예산권을 바탕으로 국가 비전을 담은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실행 기관 역시 기존 부처와 분리된 독립 기관으로 신설해 혁신적인 기획·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교한 실행 전략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최빈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한국인의 저력에 미래 통찰에 기반한 과감한 국가 리더십이 결합된다면 대한민국은 글로벌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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