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가 의료 질 향상으로 이어지려면[기고/이상열]

  • 동아일보

이상열 경희대 의대 교수·경희디지털헬스센터장
이상열 경희대 의대 교수·경희디지털헬스센터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은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한국 역시 감염 확산을 억제하면서 의료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고, 그 결과 수천만 건이 넘는 진료 경험이 축적됐다. 전화 및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비대면 진료는 만성질환 환자의 약물 지속성을 높이고, 외래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의 치료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큰 안전성 문제도 보고되지 않아 비대면 진료가 충분히 의료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가 18일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복지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의결 등을 거치면 이르면 2026년 하반기부터 법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초진 제한, 만성질환 중심, 심야 혹은 휴일 우선 적용 등 여러 제한이 담겼다. 그럼에도 논의의 초점이 ‘비대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 ‘어떻게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로 옮겨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비대면 진료가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만성질환 관리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은 꾸준한 재진, 약물 순응도 관리, 생활습관 조정이 치료의 핵심이다. 이러한 과정 일부는 비대면 환경에서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연속혈당측정기, 스마트워치, 가정용 혈압계, 활동량 측정 기기 등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비대면 모니터링과 결합해 환자 상태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기반의 인지행동치료형 솔루션은 비대면 진료와 합쳐질 때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생활습관의 규칙성, 운동 패턴, 약물 복용 상태 등을 분석해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고, 의료진이 이를 바탕으로 진료 전략을 조정하는 방식은 만성질환 관리의 표준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등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에서는 이러한 기술 기반 관리가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비대면 진료가 기대처럼 실제 의료의 질을 높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안전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다. 의료사고 예방 가이드라인 마련, 플랫폼 인증제 도입, 고위험 약물의 비대면 처방 제한 등은 기본적인 장치다. 둘째, 대면과 비대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의료 전달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안정기에는 비대면으로 관리하되,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신속히 대면 진료로 전환하는 구조가 효율적이다. 셋째, 환자 데이터 보호와 활용의 균형이 중요하다. 비대면 진료는 방대한 데이터 이동을 전제로 하므로 개인정보 보호 강화와 데이터 연동 표준화가 동시에 요구된다.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될 때 가치가 극대화된다.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의료 자원의 지역 격차라는 한국 의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비대면 진료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대면과 비대면이 조화된 스마트 의료체계를 구축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의료 서비스와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환경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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