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세계 2위 수준으로 도약했고, 배터리 산업은 사실상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 로봇 분야에서도 시각·언어·행동을 통합하는 비전언어행동모델(VLAM) 융합을 통해 피지컬 AI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부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파격적인 규제 혁신을 통해 신약 승인 기간을 미국과 유럽연합(EU) 대비 절반 수준으로 단축했고, 최근에는 ‘AI+’ 행동계획을 내세워 모든 산업의 AI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각 부처는 새로운 AI 규제 영역을 개척하는 데 바쁘고, 규제 샌드박스는 부처 간 이기주의 앞에 실효성을 잃고 있다. 국회 역시 ‘진흥’을 위장한 규제 입법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이 AI 서비스 하나를 출시하는 데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규제 부처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 결과 테크기업들은 앞다퉈 법조인을 임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공계가 우대받는 중국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AI가 글로벌 산업 혁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국제적·경제적 위상 역시 급격히 재편될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그간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자부해 왔지만, 이제는 ‘AI 전환의 함정’이라는 새로운 시험대 앞에 서 있다.
중국의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첫째, 기업가적 국가의 혁신 리스크 제로화이다. 신약 승인 속도를 2배 이상 단축하고, 국내 기준을 글로벌 기준에 맞췄다. 조건부 승인과 패스트트랙을 통해 혁신 의약품을 빠르게 시장에 출시했다. 이를 국가 의료보험 체계에 포함시켜 단가를 낮추고 수요를 단숨에 키우는 구조를 만들었다. 배터리, 로봇 등은 강력한 조달, 까다로운 인증을 통한 시장 보호, 표준화 등을 통해 국가가 기업의 초기 리스크를 줄여 주고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둘째, 국가 차원의 데이터 공유다. 중국은 모든 산업의 AI 전환을 염두에 두고 산업별 ‘데이터 세트’를 표준화해 보급하고 있다. 국유기업과 민간기업, 산업 컨소시엄 등이 데이터를 수집·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국가 의료·건강 빅데이터 센터를, 제조 분야에서는 국가 산업인터넷 빅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며, 조건부 공유 체계를 통해 기업과 연구기관의 혁신을 돕는다.
셋째, 정책 패키지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다. AI만 해도 데이터, 인프라, 전력, 표준화, 공공조달, 펀드, 세제 지원이 하나의 생태계로 작동한다. 중앙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정부는 경쟁적으로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빅테크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국유기업은 초기 시장을 창출한다. 각각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며, 부처 간 협업과 중앙-지방정부 간 정책 정합성도 높다.
늦었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다. 한국은 D램,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실질적 1·2위이고, 고니켈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기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 AI 경쟁력도 글로벌 상위권에 있다. 하지만 이 기회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정책 시너지를 만들어 내야 하며, 국회는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기업은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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