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시즌2를 예고하던 에너지 정책에 예상 밖의 변곡점이 만들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언한 ‘인공지능(AI) 에너지 대전환’의 일환으로, 원점 재검토 중이던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원래 계획대로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재생에너지 일변도로 흐르던 에너지 정책이 현실 여건을 고려한 정책 전환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이념보다 실행 가능성을 중시하는 실용정부다운 용기 있는 결정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변곡점이 실질적인 정책 전환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직 이를 뒷받침할 인적 개편의 신호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조직과 인적 구성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나온 정책 전환은 실제 변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인적·제도 개편을 통한 에너지 정책 전환 사례로는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의 에너지 다변화 정책이 참고가 된다. 당시 정부는 20년 이상 이어지던 저유가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대어 석유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었다. 실제로 1차 석유 위기가 발발한 1973년 한국의 최대 에너지원은 석유일 정도로 석유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이런 와중에 닥친 위기였기에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석유 생산의 한계를 경고한 지질학자 킹 허버트의 ‘피크 오일(Peak Oil)’ 논쟁,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자원 민족주의 확산을 계기로 석유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당시 저유가 낙관론에 묻혀 정책에 반영되지는 못했다.
석유 위기의 쓴맛을 본 정부는 에너지 수급과 안보를 전담하는 동력자원부를 신설하고, 석유 비중 확대를 주도했던 당시 경제기획원을 정책 라인에서 배제했다. 그 대신 에너지 다변화에 의한 수급 안정을 중시하는 기술 관료들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실질적인 에너지 정책 변화를 꾀했다. 그 결과 원전과 천연가스가 도입되고 석탄 발전 비중이 확대되면서 에너지 수급 안정성은 한 단계 높아졌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당시 성장 가치에만 매달리던 경제기획원이 계속 에너지 정책을 주도했다면 1980년대 다시 도래한 저유가 시대와 맞물려 에너지 다변화 정책은 크게 후퇴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재생에너지 일변도 비중 확대와 1970년대 석유 비중 확대는 수급 불안정 요인을 키운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불안정의 원인이 산유국의 수출 제한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있느냐,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확대와 같은 내부적 요인에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외양간을 소 잃고 고치느냐, 소 잃기 전에 고치느냐’의 선택이다. 과거의 에너지 다변화는 소를 잃고 나서 고친 정책 전환이었다면, 이번 에너지 정책 전환은 소를 잃기 전에 고치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정책의 실질적 전환은 인사 개편을 통해 구체화된다.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이 재생에너지 확대만을 주장하는 탈원전 인사들에게 포획된 채, 전력 수급 현실을 반영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주장해 온 전문가들이 배제되는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대통령이 언급한 AI 에너지 대전환은 한낱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인사가 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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