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호]김상욱은 한국 보수의 미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31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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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정치 이끌어온 보수 스펙트럼 넓고 깊어
계엄사태 첫 입장 견지했다 당내 퇴출 압박
이제 보수 미래에 누구 포함시킬지 답해야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나는 김상욱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김상욱이라는 초선의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계엄 선포 이후 여러 정치적 국면에서 알게 됐다. 당론을 거슬러 대통령 탄핵안과 특검법에 찬성했고 공공연하게 대통령 탄핵 촉구를 하는 이 젊은 정치인은 국민의힘 안팎에서 “퇴출” 압박을 받고 있다. 사면초가다.

김 의원의 입을 빌리자면, 본인은 “보수주의자로서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한다. 나아가 “당을 나가면 편할 수는 있겠는데, 나가버린다면 당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세력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가 국민의힘 지도부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와는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면을 특정 정치인 이야기로 굳이 시작하는 것은 한국의 보수주의 정당이 어떤 미래로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김상욱이 끊임없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역사적 결절점이 있다면, 그것이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이겠는가. 오늘 한국 보수의 적통을 잇는다고 주장하는 국민의힘이 이 정치인을 계속해서 품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한국 정당정치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하고 국회로 병력을 보낸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보수정당이 맞은 가장 큰 위기였다. 국민의힘이 공천하고 당선시킨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을 여당으로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를 찬성하고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하고 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당면했기 때문이다.

계엄 직후 국민의힘 한동훈 당시 대표는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입장문을 냈고, 당 최고위원회의는 대통령 탈당, 국무위원 전원 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체 없는 해임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하기로 결의했다. 불과 몇 달 전 일이지만, 여당에서 그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김 의원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김상욱이 한국 보수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여당에서 이후 입장의 변화를 한 번도 ‘이재명’과 ‘민주당’이 들어가지 않는 문장으로 만족스럽게 설명한 이는 없다. 굳이 대통령의 변명과 몇몇 유튜버들의 주장으로 유추하자면, 국가가 민주당과 ‘공산세력’의 위협에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를 믿겠다는 분들을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공당(公黨)이 입장을 바꿀 때에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와 유권자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보수정당은 이런 대통령의 주장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정치적 포괄성을 지니고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 보수정당이 지난 시기 걸어온 길을 회상해보면 당연하게도 여러 충돌하는 사상적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편에는 전투적 반공주의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시장친화적 자본주의가 있다. 국민의힘 당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보수정당들은 변함없이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것 못지않게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경제를 이루어냈으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을 내세운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정당이기도 했지만, 6·29와 북방정책을 선언한 노태우의 정당이었으며, 하나회를 척결해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을 없앤 김영삼의 정당이기도 했다. 냉전 시기 한미동맹을 통해 자유진영의 최첨병 역할을 자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박근혜가 톈안먼 망루에 섰을 때에도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보수라는 주장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수가 박근혜의 탄핵에 찬성할 때도, 보수는 법과 제도를 우선시한다는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를 대한민국 보수가 지난 40년 동안 이룩한 성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김상욱은 계엄 이후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과정에서 본회의장에서 2번이나 눈물을 쏟았다. 그 눈물을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가 지저분하고 비정한 일일망정, 그것이 잠시라도 기능을 멈췄을 때 공동체가 파괴되고 내전의 불안이 엄습한다는 것을 우리는 몇 달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한 정당이,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도맡았던 보수정당이 더 이상 정치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는 것은 충분히 비극적이고 책임을 느낄 만한 일이다.

한국 보수정당이 누구의 정당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다. 이승만에서 박근혜에 이르는 이름들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으나 훨씬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있었으며, 이제 거기에 윤석열이 포함되는지 답변할 과제가 남았다. 그러나 김상욱은 이미 그 끝자락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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