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후보 ‘정치 불행’ 끊겠다며 개헌 약속
대선-총선 동시선거로 제왕제 극복한다고?
87년 민주화 열망에 버금갈 절실함 필요해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일부러 날을 맞춘 것은 아니겠지만, 작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이 6월 3일 대선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니 꼭 반년이 걸렸다. 그러나 새 대통령의 선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난 6개월은 우리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이 갑자기 수면 위로 끓어넘친 시기이며, 한 번의 선거로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해결은커녕 수많은 갈등들이 잠시 잠복한 채, 다시 수면 위로 끓어오를 기회만 기다릴 것이다. 우리 정치는 이런 갈등을 해결할 능력도, 의사도 없고 국민들은 그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됐다. 선거야 치르면 되겠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치가 나아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불행의 기원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아마도 권력구조와 선거제 개혁을 중심으로 한 개헌론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 정치의 무능과 무기력은 1987년의 비상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 헌법과 정치질서가 낡았기 때문이며, 차제에 근본적인 개혁―이를테면 개헌―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정치세력도 이러한 개헌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모든 후보가 개헌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 슬로건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개헌을 고민하는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임박한 선거에서 당선을 목표로 던져 보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최소한의 진심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나같이 ‘제왕적 대통령’을 극복하겠다는 개헌안들이 4년 중임제를 도입해 대선과 총선을 ‘연동’시킨다는 것이 그렇다.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에서 의원 후보들의 공천권을 누가 행사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며, 의원 후보들이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가를 대통령 후보의 후광효과(coattail effect)에 기댈 모습을 생각하면 이런 개헌안은 되레 ‘초제왕적’ 대통령을 생산할 것이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이지만 후보들이 개헌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특히 오늘 밤 열릴 정치 분야 TV토론에서 개헌과 관련해 답해야 할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헌안을 실제로 만들고 통과시킬 구체적 계획과 타임라인이 있는가. 당선된 대통령이 임기 초, 모든 현안의 블랙홀이라 할 개헌을 꺼내 들고 현안을 희생해 가면서 이를 관철시킬 정치적 전망과 비전은 무엇인가.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던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대통령 개헌안을 마련했던 때는 1987년 이후 우리가 가장 개헌에 가깝게 다가갔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모으지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 개헌안이어서, 선언적 의미 이상은 없었다. 새 대통령이 그것을 넘어서는, 어떻게 국회 3분의 2의 지지를 모을 것이며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들려주기 바란다.
둘째, 대통령이 ‘제왕적’이라고 묘사할 때, 그리고 권력이 ‘분권화’돼야 한다고 말할 때, 과연 당신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제왕적 대통령의 다면성, 혹은 역설을 당신은 이해하는가. 수백조 원의 예산을 좌지우지하고 수천, 혹은 비공식적으로 수만 명의 공직자를 임명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니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과연 정책 리더십에 있어서도 제왕적인가. 예컨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바, 국회의 지나친 견제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에 당신은 어떻게 답하겠는가. 계엄 선포 당사자의 말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윤 전 대통령의 정책적 성취가 최소한이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셋째, 과연 후보들과 거대 양당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넘어설 준비가 됐는가. 한 표라도 더 얻은 승자가 권력을 독식하는 우리의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는 정치학 교과서가 정확하게 예측하는 바, 강력한 양당제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양당 독점체제가 자아내는 극한 대립이 40년 전 합의된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의 산물이라면, 그것을 바꾸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실제 일부 후보가 대선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새 제도는 언제나 비용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후보들은 알고 있는가. 결선투표제는 보다 많은 정당과 후보들이 선거에 참여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결선에서는 이들의 합종연횡을 보게 해 줄 만능의 솔루션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혐오와 극단적 주장들이 쉽사리 제도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출구이기도 하다. 후보들은 과연 이런 혐오와 극단의 가능성을 넘을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려 하는가. 정치적 계산이나 텅 빈 구호를 넘어 정말 당신들은 개헌에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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