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호]‘서울대 10개 만들기’에 앞서 해야 할 질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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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균형, 입시 정책으로 접근하면 실패해
서울대도 모델로서 부족한 점을 직시해야
‘미래 인재’ 키울 대학-기업-사회 협력 절실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내가 가르쳤던 어느 과목은 수강생이 180여 명에 육박했다. 학생을 면담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들의 답안과 과제를 제대로 읽을 시간도 모자랐다. 학생들과의 교감은커녕 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기조차 버거웠다. 한 반에 스무 명 남짓한 중고교 시절을 보낸 요즘 대학생들이 부모 세대의 ‘콩나물 교실’을 대학에 와서 경험해 보는 셈이다.

대학이 앓고 있는 온갖 문제를 열거한다면 사실 이런 ‘콩나물 교실’은 행복한 고민에 속한다. 대학들은 다가오는 인구절벽의 태풍을 맨 앞에서 이미 맞으면서 동시에 십수 년째 고질적인 재정 부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룡들이 지구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아마도 대학들은 그런 갑작스러운 죽음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학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대의 지적 자산이 전승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테스트를 거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대학은 단순히 젊은이들을 삶의 현장에 투입할 준비를 시키는 곳이 아니다. 이들이 최소한의 행복한 삶을 위해 갖춰야 할 지적 토대를 닦고,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성장시키는 곳이다. 한국의 대학 교육이 이에 성공했는지와는 무관하게 대학의 이런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다른 제도는 없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교육 정책, 그중에서도 고등교육 정책이 가장 다루기 힘든 분야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학에 미래를 위한 연구와 교육의 중책을 맡기면서도 어떻게 이 공룡 같은 대학들을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적응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마치 어둠 속에서 외줄을 타는 것처럼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정부의 여러 정책 제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동명의 저서에서 처음 제안한 정책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대학 정책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사고한다는 점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천할지에 따라 우려스러운 점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를 혼동해 해당 정책을 대학 정책이 아닌 산업 정책, 지역균형 정책, 심지어 입시 정책으로 추진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미국에서 스탠퍼드대를 따라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새롭게 만들어질 10개의 ‘서울대’를 따라 10개의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지역이 발전하고 대학과 전공의 서열이 타파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지역 불균형이나 입시 문제처럼 그 원인이 복잡하고 뿌리 깊은 문제들의 해법을 전적으로 지방대에 전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또한 KAIST, 포스텍 등 지방에 있는 명문 과학기술원 대학들은 왜 여기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가. 예산이 몇조 원 든다는 말만 하고, 누구를 위해 어디에 어떻게 그 재원이 쓰일 것인지, 지역구민과 사업만 남은 곳에 과연 학생과 교육이 설 자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교육과 연구는 예산의 단순함수라고 생각하는 무모함이 두렵다.

서울대가 미래의 대학으로서 정말 바람직한 모델인지도 되새겨 볼 일이다. 세계적 기준으로도 가장 다양한 전공과 국내 가장 많은 교수, 가장 많은 대학원생을 보유한 항공모함을 굳이 9개씩이나 복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서울대가 하나의 캠퍼스로 모인 지 50년이 됐지만 여전히 단과대 간 벽은 높고,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항공모함이 방향을 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서울대가 교양 있는 지식인을 양성해 왔다고, 기득권을 누린 만큼 헌신하는 인재들을 키웠다고 이제는 감히 말할 자신이 없다. 정말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진심이라면, 이런 문제들을 먼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교육 정책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근본적인 질문들로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학생들은 과연 행복한가. 대학은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이들을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기업은 이들에게 어떤 일자리를 준비하고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렇게 키운 인재들은 우리 미래를 맡길 만한 사람들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10개의 서울대가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는 서울대를 능가하는 다수의 다양하고 개성 있는 대학들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곳에 가더라도 각종 해묵은 제도적 ‘콩나물 교실’들이 있고 이를 현장에서부터 없애나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교육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본질적인 목적이란 사실을 새삼 상기해 본다.

#대학#고등교육#서울대 10개 만들기#지역균형#교육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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